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걸작선 12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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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영화에 열광한 것에 비해 원작 소설은 좀 늦게 찾아본 것 같다. 원래라면 가장 먼저 봤어야 했는데...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까지. 이렇게 세 작품을 다 봤는데 소설은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1편의 원작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별개의 작품으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스토리는 큰 틀만 똑같고 캐릭터 설정도 같은 듯 다르며 무엇보다 주제의식이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는 원작이, 주제의식은 영화 쪽이 더 좋았다. 하지만 소설이고 영화고 독자적으로 제작된 후속작 2049에는 미치지 못한다. 가장 재밌는 걸 맨 처음에 보고 말았네.

 필립 K. 딕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딱 봐도 이 작가가 디스토피아 묘사에 능한 작가구나 싶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장치를 언급하며 시작되는 도입부에는 한때 유행했을 법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는데 이게 꽤 느낌 있었다. 60년대에 나온 소설이라 옛날 느낌도 나지만 장르가 SF인 지라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이 특이한 괴리는 사뭇 독특하게 다가왔다. 전쟁의 후폭풍으로 인해 살기 힘들어져 사람들이 다른 식민지 행성으로 이주하는 미래의 지구, 그 지구를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잔류해버린 사람들이 점점 사람과 유사해지는 안드로이드와 엮이면서 벌어지는 혼란의 이야기가 바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였다.


 간단히 말해 안드로이드(영화에선 레플리컨트)와 현상금 사냥꾼(영화에선 블레이드 러너) 사이의 추격전을 다룬 하드보일드 SF라고 보면 되는데 내용은 단순하지만 일부 설정이 상당히 돋보였다. 안드로이드가 외양으로나 말하는 거나 사람이랑 구별할 수 없게 된 나머지 골치가 아파진 현상금 사냥꾼들은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식별할 수 있는 보이트 캠프 시스템을 이용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현상금 사냥꾼인 주인공은 말썽 많은 안드로이드를 '퇴역'시켜 현상금을 받아낼 수 있겠다 생각하지만 그의 앞에는 생각보다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데...

 보이트 캠프 시스템은 도의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질문이나 말을 던져봄으로써 상대의 반응을 엿보는 검사 방식인데 예를 들면 TV를 보다가 검지에 말벌이 앉았다든가 잡지를 펼쳤는데 나체의 여자 사진이 떡 하니 있다든가 자기가 들고 있는 가방은 갓난아기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등 거부감이 들고 역겨운 내용의 말을 사냥꾼이 막 던진다. 이때 인간이라면 내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공통된 반응을 보이는 반면 안드로이드는 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의 대체 노동력으로써 날 때부터 어른의 몸을 갖춰서 따로 인성 교육, 윤리관을 갖출 틈이 없었던 탓에 - 다만 입력됐을 뿐 - 이상한 질문이 있으면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지 거부감은 나중에 따라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런 검사 방식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안드로이드마저 솎아내는 것도 가능해졌지만 점차 사냥이 거듭될수록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오게 된다.


 설정 자체만으로도 재밌었지만 그 검사 장면에서 주인공과 상대 안드로이드 사이에 오가는 대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대사도 찰졌고 무엇보다 안드로이드가 릭을 흔들고자 '당신도 인간의 기억이 주입됐을 뿐인 안드로이드가 아니란 보장이 있느냐'고 하는 건 의미심장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땐 영화와 유사했는데 이 이후부터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설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외양만 똑같지만 결정적으로 감정을 타고나는가, 아니면 감정을 학습하는가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고 결론을 짓는다. 반면 영화에서는 진정한 인간의 증표란 태생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난 후자가 더 마음에 든다. 원작은 결국 안드로이드에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마무릴 지어서 허무한 경향이 있었다. 안드로이드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전개 자체는 좋았지만 결론을 내리는 근거가 좀 옛스럽지 않았나 싶다.

 이처럼 소설은 익히 알려진 영화와도 차이가 나는데 늘 그렇듯 일장일단이 있다. 영화가 주제의식에 비해 지루하고 통속적인 감정선에 따라 스토리를 전개시켰다면 소설은 보다 분위기 있고 철학적이지만 결정적으로 주제의식이 허무했다. 꽤 큰 차이가 나서 정말 완전히 별개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접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제목도 완전히 다르니... 소설을 맨 처음에 읽었더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난 2049가 제일 좋았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230538170

 이건 영화에 대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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