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가와사키 소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9.4







 처음 이 소설의 개요를 접했을 때 속으로 '뭐 이런 잡다한 소설까지 출간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일본에 정말 다양한 추리소설이 있고 작가가 있지만 우리가 꼭 그 전부를 알아야 하는가 하고 괜히 시큰둥했다. 하지만 친구가 가볍게 읽기에 좋지만 재밌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더군다나 내가 여행을 간 적 있던 에히메 현이 배경이라고 해 속는 셈치고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다.

 코믹한 작풍의 추리소설을 은근히 많이 접했지만 이 작품은 제법 신선했다. 보통 작풍이 코믹해도 탐정이나 형사가 주체적으로 사건에 임하고 해결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는 커리어 출신으로 무사안일주의로 무장한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게다가 명색이 경찰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머릿속엔 일본 군함 프라모델 조립 외에는 들어있지 않은 남자다. 이런 인간이 용케 경찰 고위직에 올랐다고 말세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작품은 이러한 커리어 제도의 허와 실을 보기 좋게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분명 다나카 겐이치는 무심코 혼잣말을 했을 뿐이고 전부 다 개떡 같은 소린데 부하들은 서장의 말씀이랍시고 찰떡 같이 알아들어 범인을 검거하고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러면서 부하들은 서장님의 지시가 없었으면 해결 못했을 거라고 추켜세우고 그때마다 다나카 겐이치는 머릴 긁적이는 게 바로 이 작품의 포인트다.


 허술한 주인공을 과대평가하는 건 고전적이면서 판타지에 가까운 코미디 설정이긴 하지만 이게 추리소설이란 장르와 맞물리니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다나카 겐이치는 정말이지 머릿속엔 일본 군함 프라모델 조립 밖엔 들어있지 않고 사건 해결엔 진즉에 겁을 먹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범하는 실수나 실언이 기가 막히게도 사건 해결로 이어지게 되는데 부하들이 어떻게 오해를 해서 사건을 해결할 것인지 그게 궁금해서 계속 읽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이른바 단서가 아닌 단서, 복선이 아닌 복선이라 할 수 있는데 들을 가치도 없는 프라모델 이야기가 오히려 이 작품이 추리소설로써 기능하게 하는 장치로 활약하니 참 절묘하단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프라모델 이야기도 나름대로 진지하니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도 웃기는 한편으로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는데 누구보다 서장을 믿고 따라 사건을 다수 해결하는 돼지마쓰 순경과 서장의 활약을 진심으로 믿고 혼자서 연심을 품는 기쿠치 경사, 서장의 행동을 한발 앞서 해석해 그를 보좌하는 고지식한 모리 부서장... 이들의 진지함과 충직함이 작품의 코미디를 배가시켰지만 역시 주인공 다나카 겐이치의 매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모든 사실을 아는 독자로서 그렇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닌 건 알지만 충분히 기고만장하고 으스댈 만한 상황이 연이어 터짐에도 한결같이 소심하게 처신한다는 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이런 경찰이 있으면 안 될 테지만 이런 사람과 상황이 있어선 안 되리란 법은 없으니까.


 작가는 무서운 작풍의 작품으로 데뷔하고 줄곧 비슷한 작풍을 유지해서 오히려 코믹한 작풍의 요번 작품이 도전이었다고 하는데 딱히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확실한 컨셉의 작품이었다. 드라마로도 나오면 무지 재밌을 것 같은데 - 시리즈물은 약간 애매한 감이 있지만. - 한번 웃음을 머금고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 그 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먼저 번역 출간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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