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파파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8.7






 학교 수업의 과제가 아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순문학을 읽기는 참 오랜만이다. 순전히 제목에 '나가사키'가 들어가고 나가사키가 배경이라 집은 책이다. 난 우리나라 소설 중 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꽤 좋아하는데 그런 나의 기대에 실로 부응하는 작품이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외국 배경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내가 외국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도 있지만 국적의 차이에 따른 일상의 변주와 주제 전달이 특히나 마음에 들기 때문이 더 크겠다.

 이 작품은 큰 틀로만 보면 보편적이고 식상한 이야기긴 하다. <나가사키 파파>는 아빠를 찾는 동시에 자아도 찾는 주인공의 여정을 은근히 유쾌하고 진지하게 그려낸다. 구효서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데 앞으로도 자주 찾아 읽어야겠다. 엄연히 문예 창작을 전공하지만 순문학은 아직도 쉽지 않은데 - 애당초 독서의 시작이 순문학이 아니었고 과 자체는 일단 성적이 맞아서 입학했을 뿐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성에 잘 맞았던 게 신기한 거지. - 이 작품은 순문학 특유의 매력을 꽤나 상기시켜줬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좋은 이야기, 그런 걸 순문학이라 한다면 꽤 잘 들어맞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필시 재독을 해야 하겠지만, 당장은 작품의 느낌과 여운을 숙지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뿌리인 아빠를, 나아가 자아를 찾기 위해 일본 나가사키에 체류하는 주인공이지만 방황을 좀 하다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인 주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모종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채 관계를 맺거나 스스로를 마주하는 전개 자체는 앞서 언급했듯 지극히 보편적이고 식상하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으레 그렇듯이' 정해진 수순대로 이야길 전개시켰을 뿐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식의 비판과 해석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못을 박아야겠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센스와 디테일과 연출이 노련한 작품이라서 통상적인 해석으로 접근했다간 한계에 부딫질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선 위에 내가 '정확하게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좋은 이야기'라고 말한 게 비꼰 거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정말로 진지하게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점 역시 문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이나 SF 같이 장르에 따라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문학은 본질적으로 숫자와 공식 등 논리적인 개념으로만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이야기로 하여금 작가와 독자 사이의 전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문학이다. 완벽한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아도 일단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내가 이 작품을 포스팅하면서 설마 문학의 매력이란 것에 대해 저렇게 길고 진지하게 얘기할 줄은 몰랐는데...... 작품 얘길 조금만 더 하자면, 일단 너무나 쉽게 읽히고 난해하진 않지만 바로바로 이해가 될 정도로 느슨하고 손쉽게 쓰인 작품은 아니라서 재독할 땐 또 다른 재미를 보장하리라는 강한 느낌을 준다. 솔직히 말해 작품이 좋은 반면에 매력을 쉽게 전달하긴 쉽지 않아 포스팅하기 까다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허점이랄 게 없는 노련한 작품이라 간만에 문학을 전공하든 아니든 떠나서 충분히 웃고 즐겼다. 그럼에도 '나도 좀 이렇게 써봤으면 좋으련만' 이란 부러움이 안 들 수가 없지만.

이름 짓는 거, 필요하겠지만 위험하고 불온해. - 24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