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그 봄, 다시 마주한 얼굴 - 그대 가시는 곳에 날이 저물까
서원균 / 잇스토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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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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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 다시 마주한 얼굴』은 첫사랑의 재회를 다룬 소설이지만, 흔한 로맨스로 흘러가지 않았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이 아닌,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었던 풋풋한 감정을 뒤늦게 확인하는 한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담았다.

이야기는 1980년대 후반 충남 아산에서 출발해, 33년 뒤 중년이 된 서건아가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배정아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소설이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흉터가 그녀임을 깨닫게 한다는 장면에서 과거로의 회상은 독자에게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는 클리셰가 된다.
짧은 3박 4일 동안 기억을 따라 걷듯 함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서로에게 위로였던 순간들,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잊혔다 생각했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자연스럽게 풋풋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가지지 못해서, 끝까지 가보지 못해서 남은 감정. 필자에게 첫사랑은 설렘보다 ‘미련’에 가깝다. 매몰차게 헤어졌지만 인연은 얄궂게도 3년 뒤, 10년 뒤, 20년 뒤 계속 마주치게 했다. 풋풋함은 사라지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중년의 모습으로 남은 기억.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이름도 부르지 못한 채 “어?” “어?” 하며 눈빛만 주고받던 장면들도 생각나고, 스치듯 생사를 확인하게 되는 인연이 얄궂어서 또 한 번 추억여행을 했다.
그러다 잊힌 줄 알았던 30년 전의 나와 그애의 감정들이 송송송 생각났다.

이 소설은 첫사랑을 생각나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시대와 공간의 특수성도 생생히 담아내 주말드라마 같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덤덤하게 말하는 화자, 큰 사건 없는 스토리,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과거의 진실 혹은 비밀을 알게 되는 재미가 이 소설의 특징이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세월의 풍파는 없었지만, 꺼내 볼 추억 하나는 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다.
<<그 봄, 다시 마주한 얼굴>>은 바로 그 기억 덕분에, 더 깊이 공감하며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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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_p11
그녀는 정말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스친 그녀의 손가락.
잊을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다친 그녀의 오른손 검지, 그 흉터.

>밑줄_p123, 124
그때 정아가 울면서 내 품에 안겼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서울에 올라가기 싫었다. 아니, 정아가 한 마디만 해주면 되었다. 서울 가지마. 라고.(...)
잡고 싶었다. 아니, 뛰어가서 끌어안고 싶었다.

>> 이 서평은 잇스토리(@it_story)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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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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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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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센도 유키 작가의 상상력은 제한이 없다. 끝을 모르고 넓어지고 깊어지는 세상을 일반인이 과연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는 철학적인 질문 위에 저자의 상상력을 듬뿍 올린 파인 다이닝 같은 작품이었다.
인간을 향한 질문 ㅡ 사후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책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에서 추악한 본능은 제외해야 하는 것일까. 고통은 불필요한 존재인가. ㅡ 에 대한 질문을 작품마다 숨겨두었다.
흥미로운 주제만큼이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과감함이 돋보이는 작품집이다. 판타지와 호러, 잔혹동화의 경계를 묘하게 걸치고 있지만, 이야기 속에 문제의식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다.

표제작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는 종이책이 사라지고 사람이 ‘책’이 된 세계다. 이 나라에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책이라 부른다. 책 한 권에는 하나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지만, 열 개의 이야기를 품은 존재 ‘열’이 나타나면서 질서가 흔들린다. 같은 이야기를 가진 두 책을 비교해 어느 쪽이 틀렸는지를 가리는 재판 ‘중판’이 열리고, 패한 책은 불태워진다.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논리로 싸우는 장면은 전래동화를 구전하던 풍경이자, 탐정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결말은 인간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을 불태우는 것이 최고의 오락이듯, 인간을 불태우는 것도 지고의 희열이었다."

수록작들은 모두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지만, 인간의 오랜 궁금증을 다룬다는 점은 같다.
"죽어도 주검을 찾아줄 이 없노라"에서는 사후 세계를 다루고, "도펠예거"는 타인이 모르는 모습을 숨기고 사는 인간을 그린다.
"통비 혼인담"은 본인은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고, 타인의 고통은 나몰라라 하는 '나만 아니면 돼.'의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금붕어 공주 이야기"는 한 사람에게만 비가 내리는 기묘한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비'라는 소재에서 BLUE가 연상되고 '우울증'이 연결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를 상징하는 듯 했다. "데우스 엑스 테라피" 는 치료와 구원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비극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작품 "책은 등뼈가 제일 먼저 생긴다"는 다시 ‘열’의 이야기로 돌아와 묻는다. 인간이 책이 되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지키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상대를 불태우더라도 내 이야기를 불태울 수 없는 욕망!!

한끗.
이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을 만났다.
자칫 잔인하고 극악무도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한끗 차이로, 아름다운 잔혹동화가 되었다.
표지의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장기가 모두 밖으로 드러나 있다. 일곱 개의 이야기 속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가장 잘 표현한 표지라 하겠다.

"읽지 않는 게 낫다. 포로가 될 테니까."
그래도 읽어보셔라. 작가의 포로가 되는 행복을 누리시길 바란다. 먼저 읽은 독자들이 극찬한 이유를 십분 이해할 수 있을테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계관에서 전혀 이질감 없는 스토리 전개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주제들로 당신의 마음을 훔칠 작품이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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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_p15
절명한 후에도 책은 계속 불탄다. 불길은 책의 살이 완전히 불타고 철제 새장에 뼈가 쌓인 후에야 잦아든다. 다 타고 남은 건 대부분 등뼈다. 옅은 크림색 등뼈는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밑줄_p125
미쓰하는 분명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것만큼, 행복해 보이는 신부의 얼굴을 걷어자고 싶어 하는 심정을. 미쓰하를 위해 생선살을 바르는 손으로 침대 밑에 숨은 소녀를 불태워 죽이는 것의 의미를. 똑같다. 나는 양쪽 다 좋아할 따름이다.





>> 이 서평은 블루홀식스(@blueholesix)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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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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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서로가 불평등하다고 외친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십대라서, 시니어라서, 종교인이라서, 정치인이라서.
정말 공평한 세상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그 질문에서 시작된 세계관을 아주 구체적인 장면들로 그렸다.
똑똑해 보이는 순간 불법이 되는 세상.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세계관이다.

이 사회에서는 ‘스마트’라는 말부터 금지된다. 지적 우월함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은 그냥 ‘폰'으로, 시험은 차별이므로 곧 사라질 예정이고, 대학 입시는 성적 대신 제비뽑기나 선착순으로 결정된다. 체스나 루빅큐브 같은 보드게임를 금지하는 이유는 잘하는 사람이 이기면 못하는 사람이 상처받기 때문이다.
모두를 배려한 결과, 누구도 잘할 수 없는 사회가 완성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언어도 지적인 표현들이 사라진다. ‘깊이 있다’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쓰면 안되고, 뉴스에서는 ‘추론하다’ 대신 '생각하다'라는 표현만 사용해야 한다. 비유도 금지다.
넓은 사유를 표현하는 일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인 세상이다.

이 디스토피아 한가운데, 피어슨과 에머리가 있다.
엄격한 모태 신앙 가정에서 자라 사유와 저항을 배운 피어슨, 그리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시대의 ‘올바름’을 빠르게 흡수한 저널리스트 에머리. 십대 시절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정신적 평등주의’라는 이념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사상 싸움으로 변한다. 살아남기 위해 순응하는 에머리와 끝까지 생각하려다 추락하는 피어슨의 대비로 우리는 각자의 입장을 되짚어 보게 된다.
순응하는 삶인가, 비판하는 삶인가.

시키는대로 사는 세상, 큰 논란없이 무난하게 살 수 있을거라 여겨졌다
정해진 규칙이니 지키면 되지, 이렇게 따지고 들 일인가 싶었던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타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확인하는 순간, 분노가 차올랐다. 평등한 사회는 오히려 삭막했고 무능한 공동체로 추락했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온 ‘선한 말’들의 기준을 생각하게 한다.
평등은 언제나 옳은가.
그렇다면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 책은 정의로운 얼굴을 쓴 가짜 공평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다, 결국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사람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평등이 믿음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큰 울림을 선사할 소설이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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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_p17
'우리는 인지력 중립을 지지합니다.' 바로 앞에 달리는 차량은 요즘 어디 가나 눈에 띄는 범퍼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지능충 꼴 보기 싫은 사람 경적 울려!' 상당수의 다른 운전자들도 지능충이 꼴 보기 싫은 모양인지, 집으로 가는 길은 시끄러웠다.

>밑줄_p131
에머리와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의견이 어긋난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내게 새로운 영역이었다. 우리 사이에 시사 문제에 대해 갈등이 없는 것은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이 같아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동의하게 되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른 자리에서 에머리는, 환경파괴 논란이 심한 셰일가스 채굴법을 두고도 '최고다'라며 치켜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 이 서평은 자음과모음(@jamobook)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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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북
팀 에디테라 지음 / 임팩터(impacter)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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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는 “기억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붙잡아 애먼글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을 살지만, 무엇을 느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쉽게 흘려보낸다. 즐거움도 슬픔도 시간 앞에서는 희미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조용히 묻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이 책은 일기장이 아니다.
매일 써야 할 이유도, 날짜를 채워야 할 의무도 없다. 쓰고 싶은 날, 마음이 움직일 때 펼치면 된다.
그래서 기록 앞에서 망설였던 사람에게 추천하는 이유다.
필자 역시 글을 쓸 때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라, 일기조차 쉽게 쓰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도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맞고 틀린지를 먼저 따지는 습관때문이다.
<<메멘토 북>>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멘토 북>>은 그 부담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었다. 질문은 대중적이면서 개인적이기도 했다. 너무 익숙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 앞에서 나를 불러내는 시간이었다.
완전히 빈 백지 앞에서는 막막함이 먼저 왔지만, 앞에서 다뤘던 질문 하나를 잡아 이어 쓰다 보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평가받지 않는 공간에서 마음 가는 대로 적는 경험은 새로웠다.

이 책을 채우는 과정은 영화 속 타임캡슐을 준비하는 기분과 닮아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지금의 나를 봉인하는 느낌이다. 언젠가 10년 뒤의 내가 이 책을 꺼내 보며, “그때 나는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하고 미소 짓기를 상상해 본다.
<<메멘토 북>>은 더 잘 써야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만의 이야기를 기록해보라 권한다.
기록이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에게, 다양한 질문들 앞에 당신을 데려갈 이 책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추천한다.



>> 이 서평은 임팩터(@impacter.official)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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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적
정현우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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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엄마는 목적 없는 전화를 하지 않는 분이시다. 아침 일찍 전화가 오는 날은 만날 일이 있는 것이고, 저녁에 전화를 하셨을 땐 부탁할 일이 있는 일이다.
애매하게 한낮에 전화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엄마 큰 병원 가보래. 소견서 써 준다고."
그때가 생각나는 시집을 만났다.
처음으로 엄마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던 날.
어중간한 시간에 울리는 벨소리는 여전히 그때를 생각나게 한다. 엄마가 암 판정을 받았을 때보다, 오히려 어중간한 시간대의 전화벨소리가 더 두려움을 남았다.

시집 <<검은 기적>>은 상실을 다루지만, 엄청난 비극처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목도한 상실을 이야기한다.
목적 없는 전화를 하지 않던 엄마에게서 걸려온, 어중간한 시간의 전화 한 통. 그 벨소리가 남긴 불안과 두려움이 이 시집의 정서와 닮아 있다.
이 시집에서 슬픔은 갑자기 덮쳐오는 파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고여서 깊어지는 바다에 가깝다.
저자의 시는 밝은 위로나 빠른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엄마를 잃은 뒤에도 밥을 차리고, 택배를 받고, 계절을 건너는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일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엄마의 부재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겨울이 오면 옷깃을 여미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시는 은유가 많고, 한 번에 뜻이 잡히지 않는 문장도 많다. 하지만 화자의 감정이 책밖으로 너울친다.
눈을 감으면 엄마가 보이고, 식탁에 앉아 울음을 삼키며 숟가락을 놓지 않는 장면들. 반죽처럼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얼굴, 잘못 온 상자를 문밖에 그대로 두고 돌아서는 모습은 설명보다 정확하게 상실의 상태를 보여준다.

<<검은 기적>> 속 화자는 애도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된 애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이 흐려지지 않도록, 엄마 옆에 앉아 수다를 떨듯 시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독자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자신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같은 일을 겪어도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듯, 이 시집은 각자의 상실을 조용히 불러낸다.
깊고 어두운 슬픔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한 시집이었다.




>p14,15
찻잔을 만지며 약속들이 얕게 줄을 긋고 사랑이 멈춘 자리에는 작은 일상이 놓여요. 당신의 부재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겨울이 올 때 옷깃을 여미는 일, 여전히 십이월에 남아 있는 창가에 흩어진 눈빛을 헤아리겠지만, 당신을 더 이상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십이월.

>p45
슬픔이 감은 눈 안쪽에서만 형체를 얻었다.

>p74
반죽에 흰 천을 덮고 기다린다.
내 얼굴이 갓 부푼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꺼진다.

내게 잘못 온 상자를 문밖에 그대로 두고 돌아온다.

>p133
울음이 식탁에 앉아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 이 서평은 저자 정현우(@fhzjffltmxm)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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