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은 기적
정현우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12월
평점 :
#협찬 #서평
>>
필자의 엄마는 목적 없는 전화를 하지 않는 분이시다. 아침 일찍 전화가 오는 날은 만날 일이 있는 것이고, 저녁에 전화를 하셨을 땐 부탁할 일이 있는 일이다.
애매하게 한낮에 전화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엄마 큰 병원 가보래. 소견서 써 준다고."
그때가 생각나는 시집을 만났다.
처음으로 엄마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던 날.
어중간한 시간에 울리는 벨소리는 여전히 그때를 생각나게 한다. 엄마가 암 판정을 받았을 때보다, 오히려 어중간한 시간대의 전화벨소리가 더 두려움을 남았다.
시집 <<검은 기적>>은 상실을 다루지만, 엄청난 비극처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목도한 상실을 이야기한다.
목적 없는 전화를 하지 않던 엄마에게서 걸려온, 어중간한 시간의 전화 한 통. 그 벨소리가 남긴 불안과 두려움이 이 시집의 정서와 닮아 있다.
이 시집에서 슬픔은 갑자기 덮쳐오는 파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고여서 깊어지는 바다에 가깝다.
저자의 시는 밝은 위로나 빠른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엄마를 잃은 뒤에도 밥을 차리고, 택배를 받고, 계절을 건너는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일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엄마의 부재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겨울이 오면 옷깃을 여미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시는 은유가 많고, 한 번에 뜻이 잡히지 않는 문장도 많다. 하지만 화자의 감정이 책밖으로 너울친다.
눈을 감으면 엄마가 보이고, 식탁에 앉아 울음을 삼키며 숟가락을 놓지 않는 장면들. 반죽처럼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얼굴, 잘못 온 상자를 문밖에 그대로 두고 돌아서는 모습은 설명보다 정확하게 상실의 상태를 보여준다.
<<검은 기적>> 속 화자는 애도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된 애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이 흐려지지 않도록, 엄마 옆에 앉아 수다를 떨듯 시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독자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자신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같은 일을 겪어도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듯, 이 시집은 각자의 상실을 조용히 불러낸다.
깊고 어두운 슬픔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한 시집이었다.
>p14,15
찻잔을 만지며 약속들이 얕게 줄을 긋고 사랑이 멈춘 자리에는 작은 일상이 놓여요. 당신의 부재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겨울이 올 때 옷깃을 여미는 일, 여전히 십이월에 남아 있는 창가에 흩어진 눈빛을 헤아리겠지만, 당신을 더 이상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십이월.
>p45
슬픔이 감은 눈 안쪽에서만 형체를 얻었다.
>p74
반죽에 흰 천을 덮고 기다린다.
내 얼굴이 갓 부푼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꺼진다.
내게 잘못 온 상자를 문밖에 그대로 두고 돌아온다.
>p133
울음이 식탁에 앉아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 이 서평은 저자 정현우(@fhzjffltmxm)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검은기적 #정현우 #아시아
#시집 #죽음 #애도 #상실 #슬픔 #엄마
#신간도서 #책추천 #시집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서평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