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구판절판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18쪽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적은 전투 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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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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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어의 사전적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작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단어에 대한 느낌을 정리한 책이라고 하면 맞을까...

작가가 개인적으로(!) 정의한 단어들 중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을 추려서 되새겨보련다. 
 


 바람 : "이 모든 바람은 흐름, 즉 움직임이다. 그러니 바람은 농경 민족의 자연이 아니라 유목 민족의 자연이다. 바람에 대한 바람은, 즉 바람에 대한 願望은, 정착민의 철학이 아니라 여행자의 철학이다. 집시라고도 하고, 트래블러라고도 하고, 치간이라고도 하고, 로마니라고도 하는 그 여행자들 말이다. 그들은 움직이는 자들이므로.(85쪽)

  ⇒ 바람 = 움직임. 이 표현이 좋다. 정착하는 대신 이동하는 삶을 택한 유목민족들에게 '바람'이란 그들의 벗이자, 선물이자, 축복. 바람처럼 이곳저곳 흘러가고 싶군.



사랑 : "사랑이라는 말을 思의 옮김말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은 당초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동사 사랑하다는, 그러니, 생각하다이자 사랑하다이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서로 잊지 못해 나는 병을 相思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만큼, 생각한다라는 뜻을 지닌 낱말이 사랑한다는 뜻을 아울러 지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미자가 박철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가 그를 생각한다는 뜻이다.(96-97쪽)

 

⇒ 사랑에 대한 명쾌한 설명. 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닳아 하는 것을 상사병에 걸렸다고 하는지 절대 잊지 못하게하는 글.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아내’라는 단어를 바라보면서, 삼풍백화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이종사촌을 떠올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 상실감, 아내의 슬픈 얼굴을 접하게 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따금 무덤을 찾는다는 일련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찾은 곳은 페르-라셰즈이다. 이곳에는 페르낭 브로델, 마리아 칼라스, 이사도라 던컨,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탕, 오스카 와일드, 알퐁스 도데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다. 그곳에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라는 인류역사에서 손꼽히는 로맨스 혹은 스캔들의 주인공들도 잠들어 있고, 짐 모리슨(어느 가게 벽에 포스터로 붙어있는 그의 모습을 2010년 6월 어느 저녁에 보았다오) 역시 잠들어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둥둥 떠있는 단어들을 잡아본다. '갑갑하다, 쓸쓸하다, 시리다, 어이없다, 나는 뭔가...' 어째 온통 부정적인 단어들뿐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감정이라도 남아있다는 것, 내가 반응하는 감정의 주된 흐름을 조금은 인식하게 된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또하나 한글의 예술성은 정말 어떻게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시대의 광풍에 맞서 한글이 영원히 살아남길 바랄뿐.  

  

'바람'을 따라 움직여 폐르-라셰즈 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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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절판


"박해에 순순히 굴복하는 동안 몸에 배어버린 정신적 질병이 그들을 마비시키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제 해방이 되고 나니 하는 짓들이 뭔지 아시오? 떠들어대는 일뿐이야."-82쪽

"그런데 아버지가-그 열에 찬 광신자가 기도를 하지 않은 거야, 알겠나? 그는 기도하지 않았어. '난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어. 나를 위해서조차도 기도할 수 없으니까'라고 그는 말했다네. 그러고는 이렇게 외쳤다는거야. '정의롭지 못한 하나님에게 나는 기도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그는 죽어갔어. 신 목사 말대로 절대 고독 속에서 말야."-214쪽

"목사님의 신이건 그 어떤 신이건 세상의 모든 신들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은 우리의 고난을 이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비참, 살육, 굶주린 백성들, 그 많은 전쟁, 그리고 그 밖의 끔찍한 일들과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253쪽

"거기에는 또 다른 한 무리의 피난민들이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을 지붕 삼고 모여 앉아 두고 온 고향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하리만큼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들 사이에 섞여들었다."-311쪽

"『순교자』의 재발견에 관한 나의 이 짧은 보고서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김은국의 이 소설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어떤 특수한 사건을 인간의 보편적 운명에 관한 ‘세계문학적’ 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의 중요성이다."-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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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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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50년 일명 '6.25 전쟁' 발발직전에 평양에 거주하는 14명의 목사가 공산군에게 잡혀 사라지고, 단 2명만이 살아 돌아온다...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흥미로운 줄거리로 인해 나는 이 책이 마치 스릴러, 탐정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교자>는 확실히 흥미로운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공산군에게 잡혀간 14명의 목사, 살아남은 2명의 목사, 누가 배반하고 반역하고 부역했는가 같은 요소는 신의 존재, 신앙의 의미, 진실의 다양성 등을 설명하기 위한 토대인데,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원치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잃고, 자신을 잃고, 신앙을 잃고, 희망을 잃는다. 공산군에게 잡혀갔다가 살아돌아온 2명의 목사 중 한명인 신 목사는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하긴 이게 사실이지만)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래요, 하늘나라 하나님의 왕국에서라도 찾아야 합니다."(271쪽)라고 말한다.  

신 목사는 죽은 12명의 목사 중 공산군에게 부역한 '배신자'가 있었음에도, 몇몇은 공산군의 바지를 부여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음에도, 평양 기독교계의 대부였던 박 목사조차 죽음 앞에서 "'정의롭지 못한 하나님에게 나는 기도하고 싶지 않아!"(214쪽)라고 외쳤음에도, 이것은 자신의 진실이 아니라며 끝까지 부인한다. 대신 자신이 부역자, 배반자라는 멍에를 대신 지고, 죽은 12명의 목사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교인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런데 왜 인간은 원치않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걸까? 목사들이 죽어갈 때 그들의 신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신 목사 역시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남은 사람들을 위해 철저하게 진실을 숨긴다. 교인들은 12명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 신앙을 굳건하게 하고, 잔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있게 되었다.  고난에 시달리고 고문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신 목사는 혼자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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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임팩트 맨 -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콜린 베번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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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린 베번의 <노임팩트맨>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의 내적성찰과 성장에 대한 내용이다. 콜린 베번은 45년간 자신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에만 집착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러한 고민이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며, “내가 시도하려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콜린은 더 이상 사람들을 붙잡고 정치인을 욕하거나, 개인이 아무리 움직여봐야 소용없다는 생각들을 버리고 내가 먼저 변하자 라는 신성한 결론을 내린다. 전기를 끄고, 자전거를 이용하고 개인 컵을 휴대하고,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으며(단, 콜린의 아내 미셀의 직장은 43층에 있으므로 예외), 로컬푸드 섭취 등등이 콜린이 우리별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우리별을 구하는 일인 동시에 콜린 개인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당신의 손에 달려 있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떠한가. 퇴근길에 플라스틱 컵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홀짝이다보면 오늘 하루를 잘 마감한듯한 착각에 빠지고, 계산대에 가서야 바구니를 들고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책하지만 여전히 비닐봉지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실내가 너무 춥다며 냉방병을 걱정하지만 정작 에어컨 온도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소비를 적극 실천하는데, 내 지적허영심을 해소하기 위해 구입해서는 읽지도 않고 꽂아만 둔 책들을 보면 스트레스 해소법이 한참 잘못 되었구나 느끼게 된다.


 콜린의 말처럼 내가 세상에 뭘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당장 움직이면 된다. 거창한 말들 대신에 오늘 하루 테이크아웃 커피 몇 잔만 안 마셔도 충분하다. 그런데 어떡하나. 오늘 저녁 회식이 있다고 한다. 콜린은 1년간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딸 이자벨라는 채식주의자 되기를 거부하며 친구 집에서 칠면조 고기를 먹어 보지만 결국 치즈를 선택했다고 하고. 그런데 나는 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나의 내적고민이 시작된다. 천천히 변하자. 오늘 회식에서는 1인분만 먹자. 딱 1인분만... 채소를 많이 먹으면 된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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