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단어의 사전적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작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단어에 대한 느낌을 정리한 책이라고 하면 맞을까...

작가가 개인적으로(!) 정의한 단어들 중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을 추려서 되새겨보련다. 
 


 바람 : "이 모든 바람은 흐름, 즉 움직임이다. 그러니 바람은 농경 민족의 자연이 아니라 유목 민족의 자연이다. 바람에 대한 바람은, 즉 바람에 대한 願望은, 정착민의 철학이 아니라 여행자의 철학이다. 집시라고도 하고, 트래블러라고도 하고, 치간이라고도 하고, 로마니라고도 하는 그 여행자들 말이다. 그들은 움직이는 자들이므로.(85쪽)

  ⇒ 바람 = 움직임. 이 표현이 좋다. 정착하는 대신 이동하는 삶을 택한 유목민족들에게 '바람'이란 그들의 벗이자, 선물이자, 축복. 바람처럼 이곳저곳 흘러가고 싶군.



사랑 : "사랑이라는 말을 思의 옮김말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은 당초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동사 사랑하다는, 그러니, 생각하다이자 사랑하다이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서로 잊지 못해 나는 병을 相思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만큼, 생각한다라는 뜻을 지닌 낱말이 사랑한다는 뜻을 아울러 지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미자가 박철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가 그를 생각한다는 뜻이다.(96-97쪽)

 

⇒ 사랑에 대한 명쾌한 설명. 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닳아 하는 것을 상사병에 걸렸다고 하는지 절대 잊지 못하게하는 글.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아내’라는 단어를 바라보면서, 삼풍백화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이종사촌을 떠올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 상실감, 아내의 슬픈 얼굴을 접하게 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따금 무덤을 찾는다는 일련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찾은 곳은 페르-라셰즈이다. 이곳에는 페르낭 브로델, 마리아 칼라스, 이사도라 던컨,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탕, 오스카 와일드, 알퐁스 도데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다. 그곳에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라는 인류역사에서 손꼽히는 로맨스 혹은 스캔들의 주인공들도 잠들어 있고, 짐 모리슨(어느 가게 벽에 포스터로 붙어있는 그의 모습을 2010년 6월 어느 저녁에 보았다오) 역시 잠들어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둥둥 떠있는 단어들을 잡아본다. '갑갑하다, 쓸쓸하다, 시리다, 어이없다, 나는 뭔가...' 어째 온통 부정적인 단어들뿐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감정이라도 남아있다는 것, 내가 반응하는 감정의 주된 흐름을 조금은 인식하게 된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또하나 한글의 예술성은 정말 어떻게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시대의 광풍에 맞서 한글이 영원히 살아남길 바랄뿐.  

  

'바람'을 따라 움직여 폐르-라셰즈 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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