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공화국의 비극 -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
뤽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5월
품절


태평양의 그 작은 섬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친족 관계가 일종의 덮개처럼 작용했다. 사람들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할 수 없었는데, 어느 가족이건 정부에 한 발씩은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108쪽

나우르는 자신의 새 미래를 찾아냈다. 바로 2차 채광. 지하로 한 층 더 내려가 땅을 파는 것이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인산염이다.-160쪽

나우루에게 '인산염'은 과연 신의 선물일까... 인산염 때문에 부유함을 누린 나우루인들이 그 인산염을 탐낸 자본주의 열강 때문에 몰락하였으나, 결국 그 인산염으로 희망을 찾으려 한다는 이야기... 이 역사의 아이러니함.-내생각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나든, 머물든 -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특별한 은퇴 이야기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 할아버님은 자신에게 곧 다가올 '은퇴'를 고민한다. 자신은 여전히 움직이고, 생각하고, 기능한다. 그런데 이 사회라는 곳이 정해놓은 기준에 의하면 베르나르 할아버지의 예순이라는 나이는 푹신한 쇼파에 앉아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뭔가. 아내의 죽음, 아이들의 독립 등 물론 할아버지는 고독에 점차 다가가고 있다. 건강도 한창 때와 비교하면 분명히 다르고 말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님은 '쇼파에 앉기'를 당당하게 거부한다. 삶에 열정적인 이 할아버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은퇴'라는 사회적 통보를 '인생은 예순부터'라는 제2의 인생시작으로 뒤바꿔버린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걷기'로부터 시작되었다. 1만2천 km 거리의 실크로드를 4년여에 걸쳐 도보로 움직인 이 할아버지는 걷기여행을 통해서 다른 문화, 다른 세상을 접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이방인인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그들의 집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때, 그는 '문턱'이 주는 이미지와 메시지에 감동한다. 이 경험은 큰 재산이 되는데 베르나르 할아버지와 아름다운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문턱'이라는 단체가 그것이다. 

 이 단체는 범죄를 저지른 비행청소년들을 감옥에 넣어 일률적으로 교화시키는 대신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할 어른과 짝을 지어 도보여행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명 비행청소년들 중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도보여행을 마친 아이들은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문턱'은 또 이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문턱'의 프로그램들은 많은 프랑스인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베르나르 할아버지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쇼파에 깊숙히 들어가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다면...   한 개인의 작은(!) 도전-물론 베르나르 할아버지의 도보여행은 말그대로 '무한도전'이다 -이 세상과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우리는 할아버지가 '은퇴'를 준비하기 위해 떠난 '도보여행'과 그 결과인 '문턱'의 설립, 활동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늙어가는 것'이 추하고, 고독하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를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떠나든, 머물든"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게 한다. 어떤 자기계발서들 보다도 더 훌륭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메시지는 독자를 강제적으로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머리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우리에게 '은퇴'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 공존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언가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또한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사실'이고, 나아가 '옳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정치인, 경제인, 학자 등 이른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움직일지언정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충분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말을 의심할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역사를 '이용'한다면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오류를 알아챌 수 있고,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다. 저자는 "과거를 보는 관점이 하나 이상일 수 있"고, "비록 일부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울지라도 과거를 정직하게 성찰하는 일은 사회를 성숙시키고 다른 사회와 교통할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말한다. 책 마지막을 장식하는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게 다루어라."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 나아가 사회, 국가와 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만나야 한다. 그 역사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있고, 절대성과 상대성이 공존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 간의 영토분쟁, 인종분쟁, 전쟁발발의 위험성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역사가 보여주는 다양한 시선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들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나는 당장 이 책을 들고 청와대를 방문해야할 것 같다. 조지 부시 못지않게 ‘역사’를 ‘악용’하려는 사람이 현재 한국에도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종말
앤드류 달비 지음, 오영나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소멸의 속도와 과정에서 약간의 혹은 극심한 차이가 발생하겠지만 결국 끝에는 소멸해버린다. ‘국제화’, ‘지구화’ 처럼 너무나 매력적인 이 용어들의 현실화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는가. 책 <언어의 종말>은 또 하나의 희생자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바로 ‘언어(Language)’이다.    

 세계화, 지구화, 국제화 등등 현 21세기의 국제어는 ‘영어(English)’이다.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지 않은 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이렇게 어려운 일이 개인의 자발성(상승 욕구 등) 또는 권력(식민권력 등)의 강제성에 의해 가능해졌음을 알 수 있다. 대체 무엇이 비영어권 사람들에게까지 ‘영어’를 강요하였는가.   

 언어의 사용을 ‘강요’당한 사람들은 대개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들이다. 인디언 부족 중 메노미노 족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말했다는 이유로 기숙학교 교사들에 의해 비누로 입이 닦이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267쪽 각주 20번 참고) 저자 앤드류 달비는 지구상에 이렇게 많은 언어가 있고, 이렇게 많은 공동체가 존재했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동시에 이렇게 다양한 생명들이 이미 소멸되었고, 곧 소멸될 운명에 놓여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언어의 소멸은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도 소멸시켜 버린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몰두하는 것은 취업, 승진 등을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토익시험 안 본 청년들이 있을까? 당장 서울 종로거리의 대형서점에 들어가 보라. 교복 입은 학생들부터 초로의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영어책 구입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이렇게 필수가 되어버린 '행동들'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가 반문해보라.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의 저자 앤드류 달비가 지적하는 ‘언어의 종말’과정에 나 역시 열렬하게 참여하고 있다. 앤드류 달비는 이런 흐름은 멈출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한다. 결국 세계는 ‘영어’라는 국제어로 단일화되고, 다양한 언어, 문화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곧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처럼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이유가 단순히 취업, 승진, 신분상승 등의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의 ‘지적호기심’이 적극 발동되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는 ‘배우고자 하는 열망’, ‘호기심’을 유지하면 된다. 결국 언어(영어를 제외한)가 종말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이런 감정들이 지속되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