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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제드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예술적, 상업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한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빛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오죽하면 집 안에 설치되어 있는 난방기만이 그와 가장 오래동안 함께 한 존재같다고 했겠는가.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인 아버지와 매년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어졌을 때 그는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밤을 혼자 보냈다. 새해를 맞는 밤도 마찬가지로 혼자였다. 이어지는 날들도, 그는 한결같이 혼자였다"
철저히 혼자인 삶... 단절된 인간관계... 감정표현 없이 살고 있는 제드가 어떠한 '욕망'을 표출한 일이 있었다. 하나는 미셸 우엘백의 살인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제드는 자신의 전시회의 서문을 부탁하기 위해 만난 작가 미셸 우엘백에게 우정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책의 소설가 미셸 우엘백과 동명이인인 이 미셸은 주인공 제드만큼 철저하고 지독하게 고독한 사람이다. 기이한 삶을 살아온 미셸은 그 죽음마저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의 머리가 깨끗이 잘려서 쇼파 위에 놓인채 발견된 것이다. 미셸 우엘백의 경악스러운 죽음의 진실을 해결하기 위해 자슬랭 경정과 동행한 제드는 "저는 우엘백을 살해한 놈이 반드시 잡혀서 처벌받길 원합니다. 제겐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라고 말한다. 자슬랭이 당신과 미셸 우엘백이 특별한 관계는 아니지 않냐고 묻자 제드는 고통스러워하며 심장발작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살인을 저지른 놈이 세상을 더한층 비루하게 만들었어요"
제드에게 미셸 우엘백이라는 사람은 비루한 세상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마치 소울메이트 같은... 처음으로 우정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대상이 처참하게 살해된 현실 앞에 그는 더욱더 비루해진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는 제드의 아버지가 안락사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협회, 즉 안락사협회를 찾아갔다가 그 협회의 직원을 마구 폭행한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안락사를 택했다. 제드는 이미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재가 되어 호수의 물고기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안락사협회를 찾아가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직원은 "다 잘 처리됐다잖아요!"라고 냉정하게 대답할 뿐이다. 아버지가 화장을 선택했고 그 재는 자연 속으로 날려보냈다는 직원의 대답을 듣고 제드는 "이제 아버지는 취리히에 상륙한 브라질 잉어의 먹이가 된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원이 아버지의 서류를 넣으려고 일어서자 제드는 그녀의 뺨을 후려갈기고, 턱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고 끝내는 복강신경총을 걷어차기까지 한다.
"이번에야말로 여자는 철제 책상 모서리에 세게 부딪히며 무너져내렸다.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제드는 척추쯤이겠다고 생각했다. 여자 쪽으로 몸을 기울여보니 그녀는 맞아서 정신이 반쯤 나간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이 장면은 너무나 잔인하다. 제드는 무덤덤하게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며 척추쯤이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아마도 이 여자는 제드에게 맞아 반신불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폭력은 죽음마저 상업적으로 계산하려는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의 목소리인가. "제드는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 원기가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일이 기쁨이자 곧 고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은 고독한 인간의 삶을 묘사하면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며 위로해주는 것 같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제드의 삶에 왜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지... 나 위로 받은 느낌이다. 정말 나 위로 받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