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페미니즘 - 여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난 페미니즘 고전
스테퍼니 스탈 지음, 고빛샘 옮김, 정희진 서문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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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읽다가 빠져들었던 책이다.

지구 반대편에 나와같은 경험을하며 같은 좌절과 절망을 겪은이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당시에 나는 그러한 절망감의 해답을 나와 비슷한처지에 있는
동네의 또래엄마들이나 친구들과 만나 신세한탄을 하며 어쨌든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헛수고 였고 공허감만 더해갔다.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나는 이제 가족들 뒤치닥거리 하면서 그들의 발전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야하는 건가?

끔찍했다. 사실 남편의 사회적 성취를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만은 없었다. 자꾸 내 자신이 작아지고 남편이
나를 딛고 일어서고 있다는 느낌때문에 얄밉기까지 했다.
티안나는 집안일에 두아이의 육아는 온전히 나혼자 만의 몫이었고
그런 내가 힘들다고 하면 남편은 일하면서 육아하는 여자들도 있는데 머가그리 힘드냐며 오히려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둘째가 24개월이 지나자 나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다행히 내가 아이낳기 전에 일했던 곳에서 다시 일할 수
있어서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내가 일을 한다고해서 나의 가사와 육아일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전의 두세배의 일이 내앞에 놓여졌고 친정 엄마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조력자가 아니라 방관자였다.
힘들면 그만두라는 식이었다.

일하는 동안 체중이 10키로가 빠져 예민해지고 집에 오면 집안일에 파묻혀 허둥지둥하며 아이들에게 짜증이가고 남편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일하시는 친정엄마에게 저녁에 아이들까지 맡기니 또 얼마나 죄송스럽던지...

큰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즈음 결단을 내렸다.
그당시 퇴근후 정작 내아이들에게 쏟을 에너지가 방전이 돼버려 책한권 읽어주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졌고 나하나만 희생하
면 모두가 편해지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일을 관두고
다시 전업주부의 길에 들어섰다.

항상 나는 내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 이시간을 즐기자`
그럼에도 밀려오는 이 공허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책의 저자인 스테퍼니 스탈도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점점 잃어가는 모습에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나뿐만 아니라 결혼후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 놓인 여성 모두의 고민이었다는것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너무 자상하여 질투가 났다.

저자는 자신의 고민의 돌파구를 페미니즘 고전 연구를 통해서
찾아보려고 했다. 그리하여 제1세대 페미니즘부터 지금의 3세대의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 고전을 읽으며 그녀들의 삶을 반추해보고 내삶과 끊임없이 비교 대조해보며 내삶에서 일어날법한 실수들을 줄이고 한단계 더 나아가가를 원하는것 같았다.
앞서간 이들의 글을 통해 내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 만도
매우 훌륭한 일이다. 이책은 앞으로 나의 딸들에게 꼭 권해 줄것이며(꼭 결혼하기 전에...) 주변에 일과 육아에 지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같이 토론해 볼 것이다.

ps. 이책의 원제는 Reading Woman: how the great books of Feminism changed my life 이다. 근데 `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라니...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이유라는데...전혀 설득력이 없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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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12-2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내 자리에 선 사람은
사내를 슬기롭게 일깨워서 이끄는 몫을 잘 해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느끼곤 해요.

그러니까, 사내가 집 바깥에서만 맴돌면서
겉모습과 겉치레를 키우는 모습을 내버려 두면 안 되고,
뒷바라지나 내조를 할 노릇이 아니라,
우리한테 저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뜻있으며 사랑스러운가를
언제나 새롭게 알려주어야지 싶어요.

아무쪼록 전업주부 아닌 살림꾼으로서
즐겁게 하루를 지으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