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에서 승리하는 무한창조 뉴크리스천 - God's Way
김종춘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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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의 절대 고독

그 누구보다 더 개별적으로 친밀하게 생전의 예수님을 따랐었지만 말년의 사도 요한이 외딴섬에서 더 깊이 깨달은 예수님은 우주적인 차원이셨다. 그의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 드러난 예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또한 심판주이시다.

절해고도의 절대 고독에서 그가 객관적으로 낯설게 경험한 예수님께는 인간의 족보 따위가 필요 없다. 예수님은 우주의 처음과 마지막이신 것이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성경 요한계시록 1장 17절). www.everc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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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서 승리하라 - 무한경쟁시대 크리스천 현실주의
김종춘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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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라

걸으면 심신이 풀리고 생각이 정리되며 새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답을 찾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상자 안이 아니라 상자 밖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정리되는 생각의 틈새로 예수님의 말씀이 침투하면 의외의 답이 돌출된다. 홀로 걸으며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자.

상자 안의 생각을 서로 연결하고 융합해 새 생각을 만들자. 상자 안의 빈틈으로 예수님을 초대하자. 궁극적인 답은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 성경의 약속이다. ˝그분이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성경 누가복음 24장 30-35절). www.everc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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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서 승리하라 - 무한경쟁시대 크리스천 현실주의
김종춘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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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설교나 영적 설교를 하면 성도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

지적 설교나 사회적 설교를 하면 성도들을 괴롭게 할 수 있다.

성도들의 감성과 영성만 터치하고 지성과 사회성을 방치한다면 최면술사다. www.everc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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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꾸는 10초
김종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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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치게 마련입니다. 잠시 쉬며 재정비할지언정 물러서지는 말아야 합니다. 함께 응원가를 부릅시다.

˝석사 논문을 3권 썼다. 책도 13권 썼다. 지금 2권 더 준비 중이다. 나름대로 꾸준했다. 그럼에도 늘 부대끼는 부족감이 있다. 지구력이다. 인생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되돌아보면 용두사미로 끝난 적이 더러 있었다. 끝까지 완주해내는가.˝ www.everc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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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서 승리하는 무한창조 뉴크리스천 - God's Way
김종춘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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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사람

예수님의 스토리텔링에 따르면 바리새파 사람과 세무원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 바리새파 사람은 따로 섰다. 선을 그어 놓고 구별하고 차별하고 소외시키겠다는 표시였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 내용은 더 그랬다. 자신은 의롭고 세무원을 비롯한 남들은 불의하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모든 십일조도 바친다며 사족을 달았다. 한마디로 말해 제 자랑이었다. 세무원은 멀리 섰다. 자격 미달이라는 표시였다. 세무원의 기도 내용은 더 그랬다. 죄인이니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석고대죄였다.

˝또 예수님은 자기가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로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무원이었다. 바리새파 사람은 따로 서서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기꾼도 아니고 정직하지 못하거나 간음하는 사람도 아니며 또 이 세무원과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 하고 기도했으나 세무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8장 9-13절).

예수님의 스토리텔링은 이미 결론이 나 있다. 스스로 높이면 낮아지게 되고 스스로 낮추면 높아지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높이며 으스대던 바리새파 사람보다 스스로 낮추며 이실직고하던 세무원이 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낮출수록 높아진다. 예수님께서 못 참으시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외면하는 부자들이다. 예수님은 대놓고 부자들을 격하하신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8장 25절).

다른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더 무겁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예수님은 대놓고 바리새파 사람들을 공격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따르고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남의 어깨에 지우고 자기들은 손끝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으며˝(현대인의성경, 마태복음 23장 23절).

왜 부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눈엣가시가 됐을까. 저들은 부유함과 의로움의 성을 쌓고 스스로 높였다. 부유함과 의로움을 독점한 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았다. 부유함과 의로움은 공유해야 하는 공공재다. 예수님의 새 나라에서는 사람 사이의 구별과 차별과 소외가 없다. 더불어 살고 어울려 사는 공동체성을 상실한 신앙은 가짜다. 신앙의 진위를 가리는 유일한 기준은 공동체성이다. 공동체성을 결여한, 개인의 경건성은 신기루일 뿐이다. 예수님의 새 나라에서는 구별과 차별과 소외를 지양하고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이 세무원이 저 바리새파 사람보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손을 얹어 축복해 달라고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자 제자들이 보고 그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18장 14-17절).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스스로 낮추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스스로 낮추면 누구와도 더불어 살 수 있고 어울려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새 나라에서는 낮추어야 높아진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이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현대인의성경, 마태복음 18장 1-4절).

예수님과 함께 새 나라가 시작됐다. 그 나라는 이전에 없었다. 부자들도, 바리새파 사람들도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새로운 반전과 파격이 필요하다.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문턱을 높이지도 않고 선을 긋지도 않는다. 스스로 낮추어 누구든,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어린 아이와 같이 스스로 낮추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야 예수님의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낮추는 그만큼 더 포용할 수 있다. 그 나라에서는 스스로 낮출수록 더 위대하다. www.everc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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