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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한국에 가장 심각한 충격을 가한 경제사건이 1997년의 금융불황이라면, 2000년대 들어 지구에 가장 심각한 충격을 가한 경제사건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지기 부실로 촉발된 2008년 경제대침체다. 2008년 대침체 시기에 미국은 금융, 제조, 보험 등 여러 업종에서 파산이 연속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으며, 대표적 자산인 주택가격이 폭락을 거듭한 암흑의 나라였다. 설상가상 그 여파는 미국에 한정되지도 못했다. 미국이 흔들리자 유럽이 직격탄을 맞았으며 우리나라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주택 미분양이 속출하는 등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범 지구적 양적완화가 실시되었고 천문학적 금액이 시장 안정화를 위해 투입되었다. 그러나 2015년 현재까지도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여전히 전 세계에서 2008년 대지진의 여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여진이 아니라 또 다른 대지진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문제 해결 없이 파멸이 다가오는 순간을 연장해놓은 것일 수도 있다.
(비록 미봉책이라 할지라도) 2008년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된 이후 이런 재앙과도 같은 대침체가 왜 일어났는지 분석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월가의 탐욕이 문제라는 책도 있었고, 은행의 방만 경영과 무분별한 대출이 원인이라는 책도 있었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지적한 책도 있었다. 그러나 유독 많은 비난을 받은 집단은 따로 있었다. 가계다. 가계가 사태의 주범으로 몰렸다. 주택이라는 자산을 담보로 한 몫 단단히 잡아보려고 시장 전체에 엄청난 거품을 발생시킨 개별가계의 탐욕이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거품이 끼든 말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적 욕심이 지구적 단위의 경제참사를 불러온 주 요인이라는 것이다.
<빚으로 지은 집>은 이와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주택시장의 거품으로 인해 2008년 대침체가 발생했다는 분석에는 일정 부분 동의한다. 다만 그게 오롯이 가계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가계가 앞장 서 주택에 거품을 끼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품이란 게 비정상적인 주택가격 상승을 의미하는 거라면 이는 가계의 소득만으로는 어림없기 때문이다. 신용에 의한 것이든, 담보에 의한 것이든 금융기관의 대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기관이 제대로 된 기준하에 엄격히 대출만 진행했더라도 (침체까지는 몰라도) 대침체라 불리는 불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출 담당 금융기관으로서 당연히 검토해야 할 개인의 신용도, 직업, 자산내역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오로지 수익창출만 하면 된다는 이기적 판단으로 실시한 비이성적, 비합리적, 막무가내식 대출이 있었기에 무능력자라도 손 쉽게 대출 행렬에 낄 수 있었고 그것이 결정적으로 주택시장에 거대한 거품을 생성해냈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이런 거품이 보다 쉽게 낄 수 있도록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킨 월가,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않고 묵인해준 정부와 산하 기관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특정 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 경제침체는 종종 발생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이 대표적이다. 닷컴기업 몰락시 해당 경제는 심한 상처를 받았으나 피해는 제한적이었다. 해당분야 종사자나 투자자들이야 괴롭겠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의 불행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달랐다. 피해자가 가계였기 때문이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나라의 경제를 지키는 버팀목인 국민 전체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해규모도 너무 컸다. 모기지사태가 터지자 가격이 크게 오른 주택을 대출을 동원해 사들인 가계는 줄어든 자산과 늘어난 빚을 감당하기 위해 소비를 급격히 줄였다. 그 결과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빠른 속도로 줄었고 부실해진 기업은 파산하거나 조직 규모를 줄였으며 그에 따라 인건비는 깎이고 해고가 늘었다. 그렇게 소득이 줄거나 사라진 노동자(개인가계)는 다시 소비를 더 줄였고 경기는 더 가라앉았으며 파산, 임금삭감, 해고는 더 늘어났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저자들은 대출자들의 부채 탕감을 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을 제안한다. 대출자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위험은 있으나 지금처럼 국가, 개인, 기업들이 한 몸처럼 엮여있는 경제 생태계에서 한 부분이 위험에 빠지면 전체가 동일한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으니 이는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판단이다. 온전히 동의하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의견이다. 이 책은 2008년 사태를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꼭 저 시기에 한정지어 읽을 필요는 없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참사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참사가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막을 방법은 없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몰입해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다. 2008년을 사태를 분석한 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