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올해 8월에 열린 부천국제만화전시회를 관람했다. 만화박물관에서 기존에 전시했던 것에 특별기획과 국제만화전시를 더한 것이었다.

특별전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의 근대 모습을 담은 만화를 소개한 이벤트였다.

일제강점기와 그 시대를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위안부, 한국전쟁, 그리고 노동운동 현장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만화로 담겨졌다.

그때 한국전쟁을 다룬, 이념이라는 것도 잘 몰랐을 평범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만화를 보고 생각했다.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이 불쌍하다고. 그런데 전쟁은 일반 민간인들에게만 비극인 것이 아니다.

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도 비극이다.


『골리앗』은 전쟁이 일반인뿐 아니라 모두의 비극임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과 다윗의 이야기를 차용해 알레고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골리앗은 싸움의 ‘ㅆ’도 모르는 행정병이다. 그는 칼이나 방패를 다뤄본 적이 별로 없다. 그냥 덩치만 조금 많이 클 뿐이다. 

그런데 이 덩치가 대장의 눈에 들어온다. 대장에게 골리앗은 전쟁을 이기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수단’이다.


대장은 골리앗을 그럴싸한 전투병사로 만든다. 

좋은 갑옷을 입히고, 큰 방패와 끝이 날카로운 창을 안겨준다. 그에게는 큰 방패를 대신 들어줄 소년 방패지기도 있다. 

골리앗이 할 일은 간단하다. 매일 대장이 일러준 장소에 나가 대장이 적어준 종이를 읽고 저녁에 돌아오면 된다. 

종이에는 적을 꾀어내기 위한 선전포고가 적혀 있었다. 

일대 일로 싸워 적이 이기면 블레셋이 그들의 종이 되고, 블레셋의 장군인 골리앗이 이기면 블레셋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내용과 똑같다. 골리앗은 홀로 맞서려 나온 다윗의 돌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골리앗을 바라보는 시선은 똑같지 않다. 

포악하고 사납던 골리앗이 가련하고 불쌍한 피해자로 변해버린다. 

그는 전쟁을 일으킨 주동자들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일 뿐이다. 

단순히 그가 생전 한 번 전투에 참가한 적이 없는 행정병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마주하기 전에 손님을 두 번 맞는다. 

한 손님은 언어가 다른 노인이고, 다른 한 손님은 다친 곰이다. 그런데 골리앗은 둘을 그냥 살려서 돌려보낸다. 

책을 읽는 독자인 나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전쟁이라는 상황이라면, 곰은 그렇다 쳐도 노인은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죽여야 한다는 방패지기 소년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런데 골리앗은 죽이지 않았다. 다음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어쩐지 그의 행적을 봤을 때 신뢰가 가지 않는 설렁설렁한 답이다.


그렇다면 대장은 왜 골리앗을 골랐을까? 

골리앗이 물가에 놓인 조약돌을 달빛에 비춰보는 감수성을 지녔고,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몰랐을 리는 없다. 

골리앗의 덩치는 그 의문을 완전히 해소시켜주지 않는다. 


대장은 골리앗이 싸울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적장과 싸우기를 원한다. 

싸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왜인지 대장이 뒤에 하는 말을 보면 그냥 달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대장은 골리앗에게 40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며, 조금 더 열심히 해보라고 부추긴다. 

블레셋 대장의 입장에서 골리앗이 앞장서서 싸워봤냐 아니냐는 아무 상관없다. 

물론 운 좋게, 큰 덩치 덕분에 골리앗이 이긴다면 그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와 반대로 져도 손해 볼 건 없다. 싸움도 할 줄 모르는 행정병이 싸움에서 진다고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뒤로도 무슨 공작을 부렸을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행정병이 혼자 싸우겠다고 적진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다는 소문을 퍼트렸을 수도 있다.)



『골리앗』은 단순히 ‘동화 다시 읽기’ 류의 재조명은 아니다.

저자는 성경에 잘 나와 있지 않은 골리앗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얘기하지만, 그를 성경에 언급된 대로 포악하게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골리앗을 대장과 왕에게 농락당한 희생양으로 그려냈다.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명목 아래 골리앗은 영문도 잘 모른 채 희생당한 것이다.


한 여성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켰는데 알고 보니 타살이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골리앗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도 수많은 골리앗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골리앗』의 이야기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