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 - be동사에서 주저앉은 당신에게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언어 특히 영어공부를 제대로 했냐는 질문에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막상 외국인 앞에 서면 입이 붙어버린다는 말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를 배우는 데에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건, 미치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국어를 쓰는 사람과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과연 그 ‘무언가’를 외국어 화자가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느냐일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인을 만나서 어버버한다면 이 부분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공부하지 않듯이 외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방법도 공부가 아니라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영어공부 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영어 회화를 목표로 하는 주인공이 무턱대고 문법부터 시작하는 모습에도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주인공 미치코 씨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시마다 선생님도 영어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말은 ‘통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의사소통에서 정밀한 문법 구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도 어린 시절 영어학원에서 가장 처음에 받은 책이, 알파벳을 배우는 것을 빼고, 링구아라는 문법책이긴 했지만, 

문법은 모국어 습득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터득하는 영역이다. 

이 점을 다 차치한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러한 면모 때문에 이 책은 영어공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요즈음은 워낙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저자가 정말 영어를 알려주기 위해 이 만화를 그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영어공부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마스다 미리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만화를 읽는 사람 중에 be 동사나 a/an/the 같은 관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스다 미리가 만화를 통해서 전달하는 문법은 그 나름대로 새로 알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문법 지식도 있었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초등학생도 암기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어공부와 관련해서도, 다른 만화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마스다 미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다. 

무작정 외우느라 의문을 가지지 못했던, 영어와 우리말의 간격을 지적하는 질문에는 그래서 깜짝 놀랐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they’와 ‘it’이다. 

전자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복수형이 ‘them’인데, 이는 사물을 지칭하는 후자의 복수형과 같다. 

미치코 씨를 내세운 저자 마스다 미리는 이러한 영어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었다. 

사람과 사물을 어떻게 같은 취급할 수 있냐는 것이었는데, 보통 그냥 외우고 넘어가는 부분을, 그녀는 그 차이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어떤 언어가 더 나은 언어인지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언어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사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는 건 결국 언어를 넘어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미치코 씨는 영어를 통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의 사고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치코 씨의 영어공부는 이처럼 모국어인 일본어와의 차이를 바탕으로 대부분 진행된다. 

그러면서 모국인 일본어를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모국어도 얼마나 좋은 언어인지를 재확인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 중 하나로 모국어와의 차이를 통해 터득하는 법이 있다. 

미치코 씨의 영어공부법도 모국어와의 차이를 통해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외국어를 배우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언어에 깔린 외국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하고, 모국어는 어떤 언어인가를 돌아보는 언어 탐구의 시간까지 가진다. 

제목이 굳이 영어‘공부’가 아니라 ‘영어’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덤으로, <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는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마스다 미리 스스로 이 책을 ‘영어 입문 전의 입문’이라고 소개하며 영어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책이라고 했는데, 

공부하려는 이 마음과 태도는 영어공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부 자체를 어떻게, 어떤 태도로 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이해가는 척 하지 않는 것이라던가, 간단한지 아닌지는 선생님이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결정한다는 것 등.


공부를 하려면 먼저 그 마음이 들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여기서 미치코 씨는 다른 언어권인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저자가 언급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가짐을 나는 언어의 재발견 혹은 재탐구에서 찾았다. 

영어와 한국어에는 이러한 차이가 있고, 일본어와는 저러한 차이가 있다는 등을 알다 보면, 세상은 더 재밌게 보인다. 

언어 자체를 재발견하는 재미도 크고, 그 언어를 매개로 사람을 재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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