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서운 공주들 - 동화책에는 없는 진짜 공주들 이야기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 지음, 노지양 옮김, 클로이 그림 / 이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디즈니 덕분에 ‘공주’라고 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모나코 왕국의 공주라든가 영국 왕실의 공주가 아니라
동화 속에 존재하는 엘사,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실존하는 공주들에게 디즈니를 통해 심어진 공주들의 환상을 덧씌우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덧 ‘공주’라고 하면 예쁘고 착하고 행복해야 하는 여자로 인식이 되었다.
그러나 공주들의 그런 이미지가 현실에 들어맞는 건 아니다.
역사 속에서 공주들의 모습을 찾자면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과거 공주들은 대부분 타국과 혼사를 통해 국가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전략적, 외교적 위치에 있었다.
그동안 디즈니가 보여준 아름다운 환상에, 아이들에게 동심을 심어주는 동화 속 공주들 모습에,
현실의 공주들이 살았던 삶은 많이 묻히고 잊혔다.
그리고 이 책은 역사에 실존했던 공주들을 끄집어내서 공주에 관해 가졌던 환상을 깨부숨과 동시에
실제로 치열하게 살았던 공주들의 실상을 밝힌다.
제목에 ‘무서운’이 들어가지만 이 공주들의 이야기는 전혀 무섭지 않다.
유명 마피아 가문의 딸인 루크레치아를 길가다 만난다거나 애인이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는데 그 아내가 측천무후라면 무섭겠지만,
무섭지 않은 공주들도 많다. 원제 ‘Princess behaving badly’를 떠올리면 더 이해하기 쉽다.
이 책이 묶은 공주들은 당시 시대상으로는 평범하다고 정의내릴 수 없었던, 비정상적인 여인들이다.
성노예에서 황후가 되었다는 록셀라나의 이야기는 중국의 달기나 서시를 떠올려 오히려 그나마 평범한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
이들이 무섭지 않다는 건, 당시의 기준과 지금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비정상’이라는 푯말이 붙었지만 지금은 붙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공주들은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매력적인 캐릭터’, ‘입체적인 캐릭터’, ‘살아 있는 캐릭터’에 가깝다.
조선시대에는 폭군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재평가되는 광해군이라든가 한(漢)나라를 무너뜨린 역적으로 평가를 받았던 조조가 현대에 와서 재조명을 받는 것처럼 이들도 재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주들이 재조명 받기 위해서는 아름답게 꾸며진 동화 속 이야기에서 나와야 한다.
(스토킹을 했다는 공주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겠지만.)
현실이 동화가 아니듯, 동화에 등장하는 공주들이 현실의 공주가 될 수 없다.
현실은 때때로 소설이나 동화보다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잔혹하기도 하다.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동화에서나 가능한 결말이다.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는 동화 이야기와 현실 이야기의 괴리감 때문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동화 밖 공주들이 산 현실은 동화처럼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 그렇게 꾸며놓은 ‘아름다운’ 이야기에만 취하면 안 된다.
그들이 삶에 얼마나 열심히 임했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건 알프힐드처럼 자신의 꿈을 좇아 치열하게 산 것일 수도 있고,
엘리자베트 황후처럼 갑갑함과 외로움, 고독함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미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며 외모를 가꾼 것일 수도 있다.
정복자를 통해 고국을 지키려 한 것인지 팔려고 한 것인지 논란이 많지만 말린체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혁명가들에게 쫓기는 공주인 데다 죽었다고 알려진 공주 행세를 한 프란치스카도 이 세상에 살아남으려 했다.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므로 동화가 현실과는 다른 구조와 결말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동화 속 공주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언제까지나 동화 같은 이야기와 동화 같은 사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동화에 가려진,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은 공주들도 알아야 한다.
이젠 진짜 공주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