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한 전쟁 ㅣ 환상문학전집 37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평점 :

요즘 SF소설 읽기에 흠뻑 빠져 있다. 사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도 SF소설은 의식적으로 멀리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노변의 피크닉>으로 시작된 나의 SF여정은 지금은 절판되어 간간히 구할 수 있는 오멜라스 시리즈에 이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고 있는 환상문학전집에까지 도달했다. 조 홀드먼이 1974년에 발표한 <영원한 전쟁>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현재 읽고 있는 중이다)와 더불어 밀리터리SF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도 다음달 정도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밀리터리SF 삼부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황금가지 환상문학전집은 <영원한 전쟁>을 마지막으로 현재 후속작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소설의 내용은 비교적 간략하다. 주인공 윌리엄 만델라가 지독한 신병 훈련을 거쳐(훈련 중에 실제 사상자가 발생한다) 토오란이라고 불리는 외계생명체와의 전쟁에 투입되어 끝없는 전쟁을 치르는 내용이다. 제목에서도 “위대한 반전소설”이라고 언급했듯이, 대학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베테랑이다. 그 어떤 명분도 없이 프랑스에서 해방된 주권국가 베트남에 파병되어 민족해방을 부르짖는 베트남 인민과 해방전쟁을 치른 조 홀드먼의 경우는 그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토오란과의 끝없는 전쟁으로 대치된다.
전쟁국가 미국은 독립전쟁으로 국가의 시초를 닦았다. 훗날 전세계를 제패하게 될 미국식 자본주의는 끝없는 전쟁을 원했고, 국가는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독점 자본가들의 요구에 충실히 응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세계정복 전쟁에 몰아 넣었고 국가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해서 끝없는 전쟁을 치러왔고, 지금도 현재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현재진행 중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지구인들처럼 그들은 왜 토오란들과 전쟁을 하는지 알고 있었던가?
만델라가 처음 투입된 알레프 작전에서 그들은 토오란들의 대공전에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의 토오란들을 문자 그대로 학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런 환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토오란은 그들의 일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게 되고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그전에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이주민들의 비행선을 토오란이 공격했다는 이유로 개전의 이유가 제시되는데 그 또한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이유로 삼은 통킹만 사건(훗날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과 매우 유사하다.
콜랩서 점프라는 방식과 스타게이트를 통해 엄청난 거리를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광대한 우주는 지구인들의 개척의 대상이 된다. 그것 또한 피아를 구분하는 미국식 이분법의 발로라고나 할까. 내가 아닌 타자를 식민 혹은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 현재 미국 대통령이 구하사는 미치광이 전략 그리고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공허한 구호들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절을 마치 소설은 예언이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콜랩서 점프를 통해 주인공 윌리엄 만델라는 사병에서 출발해서 부사관을 거쳐 결국 기동타격부대를 지휘하는 소령에까지 도달한다.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복귀한 미래의 지구는 더 이상 그전과 같은 공간이 아니었다. 신병 시절부터 같이 온갖 위기를 같이 경험하고 섹스 파트너로서도 더할 나위없었던 메리게이 포터의 부모들이 코뮌을 침략한 폭력배들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인력으로 구분되어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고, 윌리엄과 메리게이는 재입대를 결심한다. 그 과정은 마치 베트남전에서 사회에서 복귀한 람보가 도저히 사회에 적응할 수 없어 일탈하는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다가왔다. 모든 사회가 전쟁을 위한 국가로 변해 버린 현실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시 전선에 복귀하자는 그런 결심 말이다.
미래사회의 하이테크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시공을 초월하는 콜랩서 점프라는 개념도 생소했지만, 전쟁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상으로 팔다리를 잃어도 곧바로 재생해낼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인구폭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점은 또 어떤가. 윌리엄 만델라가 신병이었던 시절과 엄청나게 다른 인식의 전환이 아니었을까. 하긴 고대 그리스 테베에서는 군대의 단합과 효율성을 위해 동성애자 부대를 구성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조 홀드먼은 그런 역사의 반복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자원과 물자의 부족으로 화폐 대신 칼로리라는 가상화폐 개념이 등장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가상화폐 이슈로 한동안 떠들썩하지 않았던가.
전장에서 당한 심각한 부상에서 회복한 윌리엄과 메리게이는 본인들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다른 부대 소속으로 재배치되게 되면서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된다. 이제 마지막 임무에 배치된 윌리엄 만델라 소령은 정말 자신이 살던 20세기와 전혀 다른 이질적 사회의 군대 지도자가 되어 토오란과의 일전에 나서게 된다. 그것은 마치 조 홀드먼이 직접 체험한 베트남전에서 군부 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개념을 가진 신세대 사병들을 생과 사가 갈리는 혹독한 전선에서 지휘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싶다. 빛나는 승리의 기억을 가진 2차세계대전 용사들이 전혀 새로운 전장에서 수세기에 걸친 외세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겠다는 불굴의 의지에 불타는 베트남 민중을 상대로 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과연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토오란과의 마지막 전투 끝에 귀환했을 때, 윌리엄 만델라는 2백년도 전에 토오란과의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델라 일행은 우주에서 실종된 마지막 귀환병 그룹이었다. 어이없는 이유로 전쟁이 시작된 것처럼, 수백년을 끈 토오란과의 전쟁도 마침내 그들과 소통이 가능한 세대의 등장으로 끝나게 되었다는 말은 허무의 정점을 찍는다. 그렇지, 전쟁은 그런 거다. 정전 상태과 핵무기의 위협을 안고 사는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조 홀드먼이 이렇게 멋들어진 스페이스 오페라를 통해 전달하고 싶어한 반전 메시지를 나는 정확하게 짚어낸 것 같이 뿌듯한 독서였다. 그가 예언했고, 현재 도착한 미래에 대한 평가는 25년 뒤에 발표한 이 소설 <영원한 전쟁>의 후속편을 보고 평가해 보자. <Forever Free>가 과연 국내에 출간될 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