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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2주 전에 도서관에 다른 책을 빌리러 들렀다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빌렸다. 그 때 앤디 위어의 <아르테미스>도 빌렸는데 두 책 모두 재밌어서 만족했다. 흠, 잘 선택했군. 아 그리고 <현남 오빠에게>의 마지막 주자의 글도 화성 이주를 주제로 다룬 게 아니었던가.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군.
페미니즘 소설을 표방하는 7인의 작가들이 쓴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는 처음 세 편의 소설은 흥미로웠지만, 나머지 작가들의 소설들은 그닥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소설과 관계가 있나 싶었다. 손보미 작가의 <이방인>은 작가 특유의 스타일과 개성을 갖추긴 했지만, 전통적 서사에서는 좀 멀리 나가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그냥 그랬다. 무언가 아싸라한 그런 결말을 기대했지만, 파트너의 희생으로 다시 경위로 복귀한다는 내용 정도 밖에는 잡아내지 못한 나의 무력함을 탓해야겠지.
구병모 작가의 히파티아의 끔찍한 최후를 결말에 도치한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에서는 작가의 전작 <빨간구두당>의 반복 변주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일년에 하루 공식적인 폭력행사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의 영화 <퍼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원래 서양에서 유래한 카니발의 사회적 기능이 그런 게 아니었던가. 인간의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유도하겠다는. 우리 사회에서도 할로윈 같이 상업적으로 순화된 이벤트를 따라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일부에 국한된 일이라 나의 관심 밖이다. 고립된 섬에 오천만원이라는 상금을 받기 위해 여장 남자 코스프레를 하고 참가했다가 인간사냥을 당한다는 끔찍한 악몽으로 끝나는 이야기에서는 딱 꼬집어서 뭐라할 수 없는 그런 기시감이 들었다.
막판에 ‘너랑 결혼하기 싫다고 이 강현남 이 개자식아’라는 선언으로 끝나는 표제작에 대해서는 읽는 동안 대충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게 될지 빤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이미 충분히 막장드마라의 얼개와 전개양식을 충분히 습득했고,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사건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는 드마라공화국에서 다년 동안 산 경험의 산물인 모양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왜 십년 동안 그 지긋지긋한 현남오빠에게 매달려 살았을까. 자신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그지 같은 개자식에게 투자했는지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그것에 사랑이라는 레테르를 붙여야 하나 싶다. 그랬다면 그 개자식은 너무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놈이라고 매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세상에 어째 그런 일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란 지점은 바로 화자가 개자식의 감시에서 탈출해서 감행한 일탈이 고작 영화관 침투였는데, 얼마 뒤 그 개자식이 바로 자기 옆에 가만 앉더라는 진술이었다. 나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런 개자식과 결별했을 텐데. 도대체 그 누가 타인의 삶을 구속하고 결정할 권리가 그 개자식에게 주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네 이거. 늦게라도 개자식으로부터 탈출해서 자신의 살게 된 이에게 박수를. 그나저나 제목을 왜 <노모어 굿바이 개자식아>라고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표제작의 제목으로는 너무 쎄서 그랬을까.
<쇼코의 미소>라는 단편집으로 기대를 모은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도 재밌게 읽었다. 남편과 결혼한 게 아니라 남편과 부부생활을 하는 시어머니의 몸종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화자 유진의 어머니 정순. 이제 아들 준호의 며느리를 보게 된 정순은 고깝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해마다 외식하던 남편 생일날 굳이 자신이 직접 상을 차리겠다고 하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아 왜 난 이렇게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하긴 모든 것이 준비된 마당에 아무 일도 없이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겠지 안그래? 이렇게 겉으로는 보기 좋은 날, 누군가 나서서 밥상 정도는 가볍게 뒤집어엎어 주어야 썰이 풀릴 테니까. 우리 선수끼리 왜 그래.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의 전형을 유진의 엄마 정순은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니 절로 한숨이 날 수밖에. 세태에 빠른 준호는 이미 미래의 잘난 와이프 유학생 출신 박사님 선영에게 투항했고, 대세는 이미 끝났는데 홀로 격투장에서 부엌칼과 도마로 무장한 정순만이 외롭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그런 형세였으니, 그런 엄마의 곁을 떠나 행복한 미래를 꾸릴 유진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고 충격적으로 만난 작품은 바로 김이설 작가의 <경년>이었다. 모범생 아들 세훈과 아이돌에 빠진 딸 세은을 둔 중년 부인이 주인공이다. 문제는 모범생 세훈이 사랑도 없이 또래 아이들과 섹스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실이다. 아니 겨우 중학교 2학년 짜리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학업이 주는 스트레스 해소로 섹스를 한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었다. 요즘 세태가 그런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더욱 놀라운 건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두둔하면서 상대 여자들을 비난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딸에게 적용시켜 보라는 말에는 끔찍하다며 일갈하는 모습은 이중성 그 자체였다. 아들은 괜찮고, 자신의 귀한 딸은 안된다라는 그야말로 희극을 보는 듯한 가부장제에 몰입된 그의 모습이 성공신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 부모들의 모습에 연상됐다. 세훈 엄마는 그나마 자신의 아들이 미래에 내달릴 성공가도에서 이런 스캔들이 빚어낼 비극의 전주곡을 예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페미니즘 소설집을 표방하는 <현남 오빠에게>를 읽으면서 왜 이렇게 자꾸만 다른 영화들이 무시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어떤 장면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고독한 레플리컨트 사냥꾼 데커드가 떠오르기도 했고, 화성에 가서 삼시세끼를 마련하는 맷 데이먼이 연상되기도 했다. 첫 세 작품에서는 늘상 우리 소위 막장드라마 혹은 예능을 가장한 리얼리티 쑈가 떠올랐다. 결론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고나 할까. 서사보다 스타일에 집착하는 모호한 소설에서는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앞세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니 무언가 공통적인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억지로 이음새를 맞춰 보려고 해도 별무소용이더라. 그냥 각각의 이야기들을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그래서 더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