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예중앙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어디선가 에리 데 루카의 <나비의 무게>란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 기억의 창고 속에 책 제목을 넣어 두었다. 그러다가 지난주에 중고서점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급한 불을 어느 정도 끄고 나서 엊저녁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내 감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책이구나라는 것이었다. 고대 히브리 어를 연구하는 성서학자이자 등반가이기도 하다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에리 데 루카는 이탈리아의 국민 작가라고 하는데 의외로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런 작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 언제나 대환영이다.

 

위대한 산양 왕과 그를 추격하는 사냥꾼, 스스로는 비루한 산짐승도둑이라고 부르는 사냥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연년에 읽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이 떠올랐다. 호랑이와 인간의 대결이 <위대한 왕>의 내용이라면, 산양의 뿔과 등갈기 가죽을 탐하는 인간 사냥꾼에게 어미와 수많은 자식들을 잃은 산양왕의 대결이 <나비의 무게>의 근간을 이룬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세심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한 작가의 지극한 자연사랑이 이렇게 문학적 승화라는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냥꾼의 총에 어미를 잃고, 허공을 나는 독수리에게 누이를 잃은 산양왕은 때가 되매 무리의 왕에게 도전장을 내고 당당하게 결투를 통해 자신의 예리한 뿔로 상대방의 배를 가르고 승리를 쟁취해서 위대한 왕이 되었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과정을 통한 대자연의 섭리를 작가는 담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20년 간 그렇게 무리의 위대한 왕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묘기에 가까운 절벽타기를 선보이며, 자신의 뒤를 추격하던 사냥꾼을 농락해 왔던 산양 왕은 자신의 시간이 다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마치 만물이 변화하는 계절의 순환과 맞아 떨어지는 그런 오묘한 이치였던가. 아, 그전에 산양 왕은 자신의 누이를 잡아 갔던 배부른 독수리에게 한 차례 통쾌한 복수를 선보여 주기도 했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산양 왕의 이야기가 <나비의 무게>의 한 트랙이라면, 그런 산양 왕에게 도전장을 들이민 사냥꾼의 이야기가 나머지 한 축이다. 예순의 나이에 가까운 밀렵전문가 사냥꾼은 자신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단속반을 비웃으며 산골짜기를 산양 왕 못지않은 날랜 솜씨로 누비며 수백 마리의 산양을 총으로 사냥해 왔다. 자신의 사냥감인 산양에게 접급하기 위해 인간의 냄새를 감출 줄 아는 능력까지 겸비해서 자그마치 300마리에 가까운 산양들을 사냥했다. 소설에서 이 선수는 마치 인간의 탐욕을 빗댄 그런 캐릭터로 형상화되었는데, 수십년간의 산생활을 통해 산양 왕처럼 산에 적응된 인간으로 그려진다. 산양 왕과 사냥꾼 모두 언젠가는 시간에 굴복하게 된 유한한 존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는 점을 작가는 냉철하게 지적한다. 자신에게 철두철미한 유신론을 신봉하는 성서학자다운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순간 독자는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처럼 <나비의 무게>의 두 주인공 역시 결말을 함께 공유하리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그 둘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사건의 곳곳에 등장해서 산양 왕의 뿔 위에 사뿐히 앉거나 혹은 사냥꾼의 총구를 노니는 한 마리의 나비다. 종이처럼 가벼울 나비의 무게는 60여년에 가까운 한 남자의 삶을 그리고 위대한 리더로 20년 넘게 산양 무리를 이끌어 온 산양 왕의 육신을 창조주에게 재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냥꾼은 한 때 혁명가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정의란 것이 사라진 시대에 밀렵이 무어 대수란 말인가. 받은 만큼 정직하게 돌려주는 자연과 달리 인간세계는 배신과 협잡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냥꾼의 배에 난 칼에 찔린 흉터가 그 증거이리라.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여성에게서도 마치 깊숙한 산속에서 산양을 대하듯이 그렇게 바투 선 긴장감을 표현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나선 여성 기자와의 마지막 인터뷰는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사냥꾼이 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가을에 장작을 패면서 남겨둔 나무꼭대기의 이파리들은 산양 왕이 즐기던 별미가 아니었던가. 서로 적대적인 모습의 존재들이 어떤 의미에서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무한한 자연의 순환을 우리 미약한 인간이 어찌 다 알 수가 있겠는가.

 

최근 벌어진 살충제 계란 사태를 보면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동물의 생존 공간인 자연을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상대방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걸까하고 말이다. 조금 덜 소비하고, 조금 더 지불하고, 조금 더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을 갖춘 사회였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살충제 계란 사태는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말미에 실린 <나무를 보다>에서는 에델바이스의 이탈리아 이름 알프스 별, 혹은 스텔라 알피나를 하나 배웠다.

 

자연소설 <나비의 무게>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 정도 내공을 담은 글을 쓰려면 얼마만큼의 자기수련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찰이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에리 데 루카 작가의 다른 책들을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