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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루살렘
기 들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2년 7월
평점 :
이번엔 예루살렘이다.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인 부인 나데즈를 따라 이번에는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 그 중에서도 기독교, 무슬림 그리고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기 들릴은 그린다. 캐나다 출신(퀘벡) 아티스트로서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나름대로의 객관적 견지에서 1년간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자의 역할에 작가는 충실하다. 이제는 절판돼서 구할 수도 없는 그의 출세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평양>(2003)이 아쉽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작가의 <굿모닝 버마>보다 아무래도 최근작(2011)이어서 그런지 데생의 깊이와 스케치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따위가 일취월장했다는 느낌이다. 뭐랄까 전작에서 버마의 외부에 머물렀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굿모닝 예루살렘>에서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내부에 좀 더 깊숙하게 침투했다고나 할까.
아내를 외조하는 전업주부로 육아를 맡은 작가의 삶에 다분히 공감이 간다. 아이들이 놀만한 놀이터와 동물원을 찾아 나선 성실한 주부아빠의 모습이 이젠 낯설지 않다. 아티스트로서 작가의 작업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의 곳곳을 도보로 누볐으나, 차까지 사서 기동력을 높여 예루살렘의 다양한 곳들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인 소용의 차원에서 구매한 자동차 덕분에 독자가 호사를 누렸다고나 할까. 그의 작품은 어쩔 수 없이 미국 출신 저널리스트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비교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조 사코가 상당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팔레스타인 이슈에 접근한다면, 캐나다 사람인 기 들릴은 상대적으로 비정치적인 접근 방법을 택했다.
나치에게 홀로코스트라는 어마어마한 박해를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핍박하면서 중동의 깡패로 떠오른 이면에는 큰형 미국과 미국 내 유대인들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 지금도 중동의 패권을 잡기 위해 사사건건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이란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점점 더 병영국가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외국인들은 이스라엘에 출입국할 때마다, 여행 목적과 체류지에서 어느 호텔에 묵었는지, 심지어 조부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이스라엘 국가에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테러에 대비한 상시적인 검문검색은 일상이고, 분리장벽까지 세워 예루살렘을 그야말로 결딴내 버렸다.
유엔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정착촌에 대한 작가의 미묘한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정착촌에는 다양한 서방 물품들을 살 수 있는 마켓이 있지만, 거기서 물건을 사는 건 정착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물건사기를 단념한다. 하지만 오히려 아랍 사람들이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물건을 사는 장면을 그리기도 한다. 여전히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며, 세 번째 성전 건축을 희망하는 극정통파 유대인을 비롯해서 다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착촌 건설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와 차별이 깔려있다. 군인도 아닌 정착촌 사람들은 위협적인 상황에 대비해서 총기로 무장하고 조깅을 하기도 한다. 가이드 역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에 대비해서 총을 가지고 다닌다. 극정통파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에 젖어, 21세기 문명을 거부하고 각종 율법과 규례에 따라 생활한다. 심지어 같은 유대인 내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 동유럽 출신 유대인(아쉬케나즈)들은 예멘 출신 유대인들과 말도 섞지 않는다고 했던가. 겉모습만으로는 흑인인 에티오피아 출신 유대인은 또 어떤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유대인들이 그런 편협한 사고에 젖어 있는 건 아니다. 텔아비브나 야파에 사는 개화된 유대인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네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슬림과 기독교 양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통곡의 벽을 비롯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나 무함마드의 행적을 쫓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더불어 여전히 그들을 거부하는 극정통파 유대인과 자신들만의 삶을 추구하는 극소수의 사마리아인들도 있다고 한다. 기독교라고 해서 다 같은 기독교도가 아니고, 다양한 형태의 분파들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신의 땅 예루살렘이라는 것이 기 들릴이 말하고 싶은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만화의 말미에 기 들릴은 두 번의 가이드 투어 체험을 소개한다. 하나는 Breaking the Silence(BTS)라는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직 유대인 군인들이 조직한 NGO 단체의 투어이고, 후자는 정착민이 소개하는 가이드 투어이다. 특이한 점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가리고, 자신들이 알리고 싶은 사실만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헤브론 정착민들이 제공하는 투어에서는 1994년 골드스타인이 패트리아크 동굴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면, BTS 투어에서는 1929년 학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인 강제철거와 이주 투쟁에 대해 보여주기를 원한다. 아이러니 중의 하나는 관광에 나선 투어리스트들과 정착민들이 서로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BTS에서는 균형 잡힌 시선을 위해 헤브론 정착민들이 실시하는 투어를 해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캐나다 출신 만화가 기 들릴이 이 책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고 확신한다. 편견 없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이슈를 보라.
최근 부패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의 온건 노선이야말로 오늘날 시한폭탄이 된 팔레스타인 해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루살렘 시장을 역임한 정치인 올메르트는 사임 연설을 통해 위대한 이스라엘을 꿈꾸는 이들에게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조만간 이뤄지기 힘들겠지만, 비정상의 정상화와 중동평화를 위해 그의 바람이 꼭 이뤄지길 희망해본다.
[리딩데이트]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