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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콩고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월
평점 :
바로 어제 배상민 작가의 <조공원정대>를 다 읽고 나서, 바로 그동안 눈으로 찜해 두었던 <콩고, 콩고>를 사러 달려갔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책을 다 읽었다. 확실히 배상민 작가의 글은 재밌다. 그동안 최제훈 작가를 최고의 신진 작가로 꼽았었는데, 이제 그 반열에 한 명을 추가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 뭐랄까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배상민 작가의 첫 소설인 <콩고, 콩고>는 그런 나의 기대에 정확하게 부응했다.
소설 <콩고, 콩고>는 기본적으로 두 명의 바보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존재했던 달리기와 버티기에 능한 바보 담과 교활할 정도로 영리한 바보 부, 그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배상민 작가는 <조공원정대>에 나오는 <아담의 배꼽>에서처럼 기존의 전설/성경에서 모티브를 채용해서 새로운 진화론에 입각한 창세신화에 도전한다. 척 봐도 아담과 이브(이부)가 떠오르지 않는가? 유사 이래 새로울 게 없다는 이집트 피라미드 경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서기 일만년에 8천년 전에 존재했던 아종 인류를 추적하는 발굴단장에게 역사의 베일을 벗기는 임무를 부여한다. 그렇게 독자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해서 우리의 주인공들과 만나게 된다.
아이큐 78의 소년 담은 모자라는 지적 능력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산한 삶 가운데 내던져진다. 그리고 담의 구원자로서 사창가 출신(작가의 고의적 선택이리라) 부가 등장해서, 수확(도둑질)의 즐거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그 둘의 만남은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지적 능력의 부재를 가진 소년이 태생을 알 수 없는 비천한 출신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소녀를 만나는 건 서사 전개를 위한 필연이다.
배상민 작가는 현대판 신화 다시쓰기에 “범죄의 재구성”과 담의 플래시백이 이어지는 정신병원 장면을 삽입한다. 전자는 담과 부가 생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후자는 인간 세상에 부적응한 아종 인류의 종착지로서 작동한다. 다만, 정신병원 부분은 기존의 작품들에서 많이 차용된 일종의 문학적 클리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부의 지휘 아래, 담의 세상에 대한 투쟁은 계속된다. 부는 애초부터 자신이 현생 인류와는 다르다는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종족을 만들 궁리에 전념한다. 그러기 위해 수시로 ‘수확’을 기획하고, 행복 바이러스를 만들어 현생 인류를 멸종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싶어한다. 그녀의 기획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도 담은 가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부는 모든 것을 초월한 초인(위버멘쉬)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8천 년이 지난 다음에는 그녀 역시 삶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모든 것을 경쟁으로 귀결시키는 신자유주의 광풍에 맞서 그런 경쟁이 없이도 충분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왠지 공허하게 다가온다. 획일화된 행복과 가치의 추구야말로 야만의 시대에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의 배식 경쟁의 위선과 허구를 깨달은 담 일당은 비로소 권력에 대한 저항을 개시한다. 부가 만들어낸 행복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할 조짐이 보이자, 로제타스톤이라 불리는 비밀결사 조직은 자신들만 누려야 할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행복 바이러스를 디지털 마약이라 규정하고 철저하게 금지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칙들에 포위된 우리네 삶에 대한 숱한 질문들을 배상민 작가는 담과 부의 종횡무진 활약상에 뭉뚱그려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행복하냐고.
처음 제목만 보고 황당무계한 아프리카 탐험이 아닐까 하는 나의 짐작은 여지없이 빗겨나갔다. 대신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에 멋진 SF 인류 진화론으로 버무려진 소설과 만나게 됐다. 중반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비해 후반부의 힘이 좀 달리긴 했지만, <콩고, 콩고>가 배상민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정도면 수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래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