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대산문학상을 세 여성작가들이 휩쓸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세 주인공 중의 한 명인 김숨 작가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을 어제 부곡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어떤 책은 300쪽 남짓해도 읽기가 버겁지만 또 어떤 책은 금세 다 읽을 수가 있다. 물론 작가의 내공과 노력이 한땀한땀 쌓인 책을 이렇게 빨리 읽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소설은 단수로 시작된다. 그녀(김미선-며느리)와 여자(정순자-시어머니)가 소설 제목에 나오는 여인들이다. 어떻게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트렌드를 장악한 막장 시월드의 재탕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든다. 물론 독자의 기대와는 상반된 서사가 펼쳐진다. 지난 5년간 삶을 공유했지만 전혀 살갑지 않은 시어머니와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가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아토피에 걸려 고생하는 자기 아들에 들이는 돈은 아깝지 않지만, 자신이 홈쇼핑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육아와 살림을 도맡은 시어머니가 침이 마르는 구강건조증으로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게 되자 소용되는 비용이 그녀는 아깝게 느껴진다. 전문대졸의 내세울 게 없는 그녀는 중산층의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그녀를 옥죄어 오는 상황은 그녀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토목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부동간 경기 침체로 언제 잘릴지 파리목숨이고, 자신 역시 임신-출산을 억척스럽게 치르며 지켜낸 직장에서 해고된다.

 

그동안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 주던 시어머니의 존재가 이제는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그녀는 진화와 멸종 운운해대며 한바탕 여자에게 설교를 늘어놓지만, 자신 역시 시장에서 도태된 마당에 그녀의 말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항상 주눅 들어 자기주장 대신 말수를 아끼는 여자가 못마땅할 따름이다. 게다가 구강건조증으로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 가는 시어머니를 내쫓을 궁리에 여념이 없다. 아들 민수가 어느 자라자 더 이상 여자가 필요없어졌다는 냉혹한 현실분석이 그 뒤에 자리한다.

 

사실 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은 단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에 방점을 찍는다. 단수라는 결핍 상황에서 며느리는 무능력한 남편, 아토피에 걸려 피부가 짓무른 아들 등의 원인을 여자(시어머니)에게 돌린다. 물론 그것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기에 더 답답할 뿐이다.

 

여인들의 갈등을 주축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진화하는 적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라는 질문에 자연스레 도달하게 된다. 김숨 작가는 그 점에 대해 친절하지 않다. 서사의 개연성을 통해 독자는 적들의 정체를 조심스레 규정해 본다. 혹자는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 자신이라고 했는데, 그녀와 여자의 관계를 보면 이중생물 관계처럼 서로 공생하면서 상호적대적인 관계로 진화하는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여자의 무반응, 무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가 여자에게 손자의 종기에 침을 발랐다는 이유로 모멸과 멸시를 퍼붓지만 그녀의 반응은 역시나 뚱하다. 다만, 여자의 구강건조증과 민수의 아토피 증세 심화가 어떤 연관을 가지지 않나 추측만 가능할 따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부엌 주도권을 두고 그녀와 여자가 갈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부엌일 중에 설거지를 가장 싫어하는 그녀보다 월등한 실력을 자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부엌을 변경한 장면에 대한 묘사는 확실히 남자 작가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밀하게 그려냈다. 여자의 장끼인 아귀찜 준비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관찰력이 없다면 쉽지 않을 듯 싶다.

 

지난주에 읽은 김이설 작가의 <환영>에 나오는 아이에 대한 집착/미련은 김숨 작가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등장한다. 아이를 위해서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벌이에 전념하지만, 실상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통과 대면의 시간은 부족한 엄마의 빈자리를 할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묘사가 특히 그렇다. 언제부터 아이의 육아가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의 몫이 된 걸까.

 

여자의 마르는 침 이야기는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한다. 명백하게 그녀가 제공한 모멸과 멸시 때문에 발생한 스트레스가 결핍을 상징하는 구강건조증으로 연결된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분비물 침이 부족해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가뜩이나 결핍 투성이 가계에 생채기를 냈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짜증스럽기만 하다. 자신이 원인제공자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장면에서는 이중생물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그녀와 여자는 같은 종이기에, 공생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일반의 환상에 균열을 제공한다.

 

결말 부분이 조금 황망스럽긴 하지만, 상상력을 가득 담은 개연성 넘치는 서사 구조와 여성작가 특유의 디테일이 참 마음에 들었다. 또 이렇게 멋진 우리 문학 한편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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