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진영화 옮김 / 책만드는집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한낱 고양이보다 못하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 씨는 어쩌면 우리네 호모 사피엔스가 하릴없이 골목을 누비는 고양이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간들을 위한 우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창조해냈다.

페르시아 종으로 보이는 이름 없는 고양이 “나”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선생으로 근무하는 구샤미 씨네 집에 기거하게 된다. 고양이 녀석의 탄생에서부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간의 삶을 작가는 넌지시 꼬집는다. 만성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구샤미 선생은 스스로 지식인이라 자부하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만, 나의 관찰에 의하면 무엇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건 없다. 지식인이 달래 지식인이던가.

내(고양이)가 보기에 선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다. 특히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구샤미 선생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연구합네 하고 서재에 틀어박히기 일쑤지만, 정작 제대로 공부한 적이 거의 없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관찰이 번득이는 순간이다. 지식인 흉내를 내기 위해 어려운 책도 읽는다고 하지만 실제 용도는 수면 활성제란다. 이름 하나 없는 고양이 주제에 이렇게 냉소적이기까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동양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청나라를 격파하고, 강국 러시아마저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는 뤼순전투에서 격파하면서 세계열강의 하나로 인정받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기개가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시절이다. 부국강병을 모토로 삼은 메이지 유신의 성공으로 잔뜩 고양된 당대 지식인과 달리 고양이인 내가 보는 구샤미 선생과 그의 친구 메이테이 등은 하나같이 더리적어 보일 뿐이다.

구샤미 선생의 제자인 미즈시마 간게쓰의 뒷조사를 위해 예고도 없이 선생의 집으로 쫓아온 가네다 집안 여주인의 코를 골려 먹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돈은 많지만 어떻게 보면 성공한 상인에 지나지 않는 실업가를 면박하는 지식인의 단면도 빠지지 않는다. 가네다 집안의 하수인으로 등장한 스즈키 도주로의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본궤도에 오르는 과정에서 보이는 경학유착의 전형으로 보인다.

문학이라는 변용을 통해 보는 고양이의 시선만큼이나, 고양이에게 인간사는 알쏭달쏭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호기심 많은 고양이 녀석은 주인이 먹다 남긴 떡국을 먹다 떡이 이빨에 걸려 춤을 추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 남의 연애사에는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들키면 작대기에 두들겨 맞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에서 자신처럼 잠입에 뛰어난 닌자 고양이는 없을 거라며 가네다 집안에 침투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보다 잘났다고 주절대는 이름 없는 고양이 이야기가 참 재밌다.

한편, 고양이가 주제넘게 너무 인간사에 많이 개입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시콜콜한 묘사에서는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구샤미 선생의 지나친 잘난 척과 문학작품의 인용은 소설의 흥미진진한 전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점이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작가의 한 작품만으로 그를 평가한다는 것이 무리였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고양이처럼 쥐잡기에도 능하지 못하고, 이웃의 검둥이처럼 다랑어 토막을 탐내지도 않는 이 이름 없는 고양이의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의 자세가 어떻게 보면 부럽게 느껴졌다. 자그마치 한 세기 전에 아직까지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이 놀라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필력에 그저 존경을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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