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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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 애도(哀悼)라는 말을 찾아봤다. ‘죽음을 슬퍼하다’란 뜻이란다. 오호, 애도에는 항상 죽음이란 녀석이 짝을 짓는구나. 작년 하반기에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와 함께 치열하게 나오키상 수상의 경합을 벌였다는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의 주인공 사카쓰키 시즈토는 바로 그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특이하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의 죽음도 애도한다.
 
솔직히 처음에 책을 대했을 때, 책의 내용보다 600쪽을 훨씬 넘어가는 두툼한 사이즈에 먼저 눈이 갔다. 하지만, 텐도 아라타가 창조해낸 일본 전국을 돌며 애도여행을 하는 시즈토의 이야기가 지닌 마성에 이끌려 그만 늦은 밤에 눈을 비벼 가며 다 단숨에 읽어 버렸다. 모두 9장으로 구성된 <애도하는 사람>은 베테랑 주간지 기자인 마키노 고타로, 애도하는 남자 시즈토의 어머니로 위암으로 죽어가는 사카쓰기 준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죽이고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출소한 나기 유키요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먼저 마키노는 가십을 주로 다루는 주간지에서 ‘인간의 악’을 파헤치는 일로 먹고산다. 오늘도 사건 현장에서 무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건수가 없을까 헤매던 마키노는 애도하는 남자, 사카쓰키 시즈토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독자는 마키노와 시즈토의 대화를 통해 시즈토가 전국을 유랑하며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시에 바로 이런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도대체 왜 시즈토는 이 애도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그다음 이야기에서는 위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택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며 호스피스 케어를 받는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가 주인공이다. 텐도 아라타는 소설에서 세 번인가 거미를 등장시키는데, 과연 거미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미가 짓는 거미줄 같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말하려던 걸까? 우연한 만남 그리고 아스라한 그리움에 슬며시 작가는 거미를 파견한다.
 
책을 읽으면서 시즈토의 이 기이한 애도여행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고인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 받았느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인간 본질에 대한 구도의 여행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라고 분노를 느꼈다. 특히 아이를 임신하고, 남자친구와 절연하고 싱글 맘으로 아이를 낳게 될 딸에 대한 아련한 마음에 마음 놓고 죽을 수도 없는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이 애도하는 남자가 미워지기도 하더라.
 
세 번째로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자 살해범 나기 유키요는 자신의 남편이 죽음을 맞이한 현장에서 시즈토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시즈토의 애도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죽인 이에 대한 정보가 없더라도, 살면서 누군가 그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신념으로 시즈토는 힘겨운 여행을 계속한다. 그에게 죽은 이가 무슨 이유로 해서 죽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시즈토의 행동은 그의 순례여행이라는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구체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또 한편으로는 광신적인 종교단체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오해도 받게 되지만, 시즈토의 애도여행은 교묘하게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현대인에게 공명을 울린다. 그리고 조금씩 그의 애도는 타인에게 공감을 얻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거의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마키노는 물론이고, 죽은 남편의 원혼에 시달리는 유키요까지 그의 순례에 동참한다. 그들이 그의 애도를 100% 이해했을진 모르겠지만, 그의 행위를 복제(reproduction)한다는 의미에서 텐도 아라타의 소설은 철저하게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의 근간을 따른다.
 
이렇게 재현과 복제의 과정을 거친 텐도 아라타의 글은 마지막으로 시즈토의 애도가 어떻게 정당화(justification)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애도가 정당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의 행위에 대한 재현은 물론이고 복제도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아무리 세상에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라도 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죽음의 공평성에서, 그 죽음을 애도하는 시즈토의 행위는 정당화의 과정을 조금씩 밟아 나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숭고한 애도여행을 하는 시즈토가 정작 자신의 가족, 특히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무심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텐도 아라타는 독자의 이런 반응까지 고려해서 책을 기술했던 걸까? 정작 자기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과연 시즈토가 어떤 애도를 할지 너무나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애도하는 사람> 읽기는 타인의 죽음에 대한 시즈토의 절절한 애도와 어머니에 대한 무심함에 대한 분노라는 양가적 감정의 격전장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허공에 발을 디디는 듯한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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