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공장 골목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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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에 대해서 예전부터 그야말로 귀에 못이 다 박히게 들어왔다. 얼마 전에 사무실 동료가 두 권짜리 <분노의 포도>를 읽을 적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조림공장 골목>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는데 그 책의 저자가 바로 미국 출신의 저명한 작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고 지난 주말 찾은 헤이리에서 책을 샀고, 바로 다 읽었다.

미국 출신으로는 6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자 <분노의 포도>로 1939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샐리나스 출신의 스타인벡은 독일과 아일랜드 후손으로 생전에 모두 27권의 책을 썼다. <통조림공장 골목> 역시 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캐너리 로(Cannery Row:소설의 원제목이기도 하다)를 그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명소로 탈바꿈했지만, 스타인벡이 그리는 캐너리 로는 한창 경기 좋던 시절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들어서 있던 우중충한 동네였던 것 같다.

일상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에누리없이) 공급하는 리청의 식료품점에서 스타인벡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에는 리쿼 라이선스가 없으면 팔 수 없는 술도 그 시절에는 식료품점에서도 취급했는지, 동네 주당들은 리청의 가게에서 위스키도 외상으로 가져다 먹는다. 동네 날건달들인 맥 패거리가 리청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살게 된 팰리스 플롭하우스 앤든 그릴 그리고 도나 플러드가 운영하는 점잖은 여인네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만, 필요악인 유곽과 베어 플래그가 소설의 주요 공간이다.

아, 거기에 웨스턴 생물학 연구소에서 거주하며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닥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 차례대로 공간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마친 스타인벡은 상류층의 화려한 삶이나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소시민들의 삶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그려 나간다.

책을 읽다가 문득 맥 패거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그들은 정상적인 일자리를 얻지 않고, 항상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혹은 리청의 가게에서 외상을 얻어먹거나 혹은 닥으로부터 돈을 뜯을 궁리만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나중에 닥이 자신의 친구에게도 설명하다시피, 그들을 위한 변명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들은 보헤미안 같은 삶을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하루의 삶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맥 패거리가 사람 좋은 닥을 위해 파티를 준비해 주겠다고 개구리 사냥을 나서서 우연히 만난 대장과 함께 밀주를 마시고 흥청거리는 장면이 계속해서 눈에 어른거린다. 리청에게 빌린 고물 트럭을 간신히 고쳐서, 개구리 사냥을 나선 맥 패거리가 길에서 수탉을 치고 그 닭으로 개구리사냥을 하기 전에 닭고기 스튜를 해먹고 떠들썩한 그들만의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참 유쾌했다. 비록 그들이 사회로부터 불한당이라는 말을 들을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붙인 주홍글씨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다 자신만의 삶의 모습이 있을 텐데,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재단하는 게 과연 정당할까?

이런 몬터레이 특유의 공동체적인 삶의 진가는 인플루엔자가 도시를 덮쳐, 병든 사람들을 간호할 일손이 부족해졌을 때 도나 플러드와 그녀의 동료가 기꺼이 이웃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손가락질하기를 마다하지 않지만, 그런 위기상황에서 그들을 돕는 건 부유한 공장장이나 회계사들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이웃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미국에도 그런 정신이 남아 있는진 모르겠지만, 스타인벡이 그린 반세기 전의 미국에는 그랬었나 보다.

맥 패거리의 개구리 사냥과 실패한 닥을 위한 파티로 싸한 분위기가 돌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다시 닥을 위한 성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몬터레이 특유의 ‘유익한 영향력’이라고나 할까? 맥 패거리는 닥을 위해 암고양이로 수고양이들을 생포하고, 도나의 아가씨들은 조각 이불을 준비한다. 화가이자 스케이터 앙리는 그림을 선물로 준비하고, 개구리 사냥을 나섰다가 가막소에 들어간 게이도 보안관과 거래를 해서 파티에 참석한다.

닥을 위한 파티는 예상대로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들은 모두 즐겁다. 핑계는 닥을 위한 파티였지만,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한마당이었다. 부도 권력도 그리고 명예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지만, 행복하고 싶다는 인간 공통의 욕망에는 차이가 없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저 재미가 있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탁월한 이야기꾼인 스타인벡은 바로 그 재미의 고갱이를 쭉 뽑아 올린다. 역시 대가다운 필력이었다.

<통조림공장 골목>의 후속편인 <달콤한 목요일>에도 곧 도전할 계획이다. 이 소설은 1982년 데이빗 워드 감독의 연출로 닉 놀테와 데브라 윙거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쉽게 구해볼 수가 없다. 아,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몬터레이 캐너리 로를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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