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작가의 유년시절 기록을 읽는 것은 작품을 읽는 만큼이나 재밌었다. 나에게 아멜리 노통브의 유년을 망라하는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렇게 다가왔다. 2010년 2월, 노통브의 책에 옴팡지게 빠져 버린 나는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그녀의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물론, 신간이나 잘 나가는 책들은 예상대로 관외 대출 중이었고 서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골라 집은 책이 바로 <배고픔의 자서전>이었다.

갑자기 생뚱맞게 웬 바누아투, 예전에는 뉴헤브리디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남태평양의 천국에서 그녀는 배고픔이라고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책을 읽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식량부족으로 아사자가 수없이 발생하는 지구별에 바누아투라는 지명만큼이나 낯선 공간은 풍요 그 자체다. 어떠한 부족함 없이 사는 바누아투 사람들에 비해, 작가는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의 부족으로 끊임없는 공복을 느낀다.

벨기에 출신 외교관 아버지를 둔 아멜리 노통브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미얀마 그리고 라오스에서 살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모 니쇼 상 밑에서 자란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자유를 꿈꾸던 노통브는 설탕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을 꿈꾸는 외국인 소녀였다. 작가라는 미래의 직업을 의식해서였을까? 획일화된 교육과 체제에 체질적인 반항심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예절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5년간의 일본에서의 생활이 비해, 문화혁명의 격동기를 겪고 있던 베이징은 그녀에게 천국보다 낯설었으리라. 달달한 먹거리 사냥을 위해 베이징의 외국인 게토 산리툰의 곳곳을 서슴지 않고 털고, 그때 획득한 전리품이었던 스페퀼로라는 벨기에 단 과자 하나에 쾌락과 관능을 동시에 느끼는 조숙한 소녀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술 맛을 들인 그녀는 조금씩 유아 알코올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노통브의 베이징 생활은 그녀에게 평생의 지긋지긋한 반려자가 된 천식이라는 병을 제공하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에 이은 미국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자본주의 향연을 노통브 가족에게 선사해 주었다. 언니 쥘리에트와 아멜리 노통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즐거운 8살, 9살 그리고 10살의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동남아시아의 빈국 방글라데시로 가게 되면서 체험 극과 극의 현장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의 물질적 풍요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빈곤은 정말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할 게 없었던 방글라데시에서 그녀는 훗날 자신의 글쓰기의 자양분이 될 엄청난 양의 독서를 개시한다.

열일곱 살에 비로소 조국 벨기에에 돌아와 대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21살에 되던 해에 ‘내 나라’ 일본에 돌아가 사랑을 경험하고 본격적인 글쓰기에 돌입하게 된다. 그녀 자신의 유년기를 마감하면서, 추출작업이었던 글쓰기가 어느 순간 짜릿한 쾌락의 원천이 되어 버렸노라고 고백하면서 이 자서전을 마무리한다.

작가의 유년기를 통해, 나중에 그녀 작품의 모티브가 된 소재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적의 화장법>에서 텍스토르 텍셀이 자신의 첫 살인으로 고백했던 어느 동료 학생의 죽음은 놀랍게도 그녀의 실제 체험이었다! 사랑도 자신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노라는 선언은 조금은 뒤틀린 방식으로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살인자의 건강법>과 <적의 화장법>에 등장을 한다. 아직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다 읽어 보지 못해서 그 나머지 부분들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분명히 노통브의 유년시절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전작주의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좋은 점은 우선 그녀의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이 많다는 점과 아직도 한창 나이인지라 계속해서 그녀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 행복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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