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존 맥스웰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읽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악명 높은 나라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서 작품활동을 하는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다. 평생의 두 번 주어지지 않는 부커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이자, 200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로 더 유명하다.

이 정도가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접한 존 쿳시의 약력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무슨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았는지도 몰랐다. 그가 작품생활의 모체를 이루던 남아프리카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물론 쿳시의 작품을 처음 접해 보기 때문에 달라진 그의 변화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실험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은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악전고투를 했다. 그 이유는 한눈에 척 봐도 여느 책과 달라 보이는 길쭉한 판형의 책에서 펼쳐지는 각기 다른 세 가지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실제적인 문제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 부분은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세뇨르 C가 쓰는 정치평론을 비롯한 각종 칼럼이고, 두 번째 부분은 세뇨르 C가 현재 자신이 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맨션에서 만난 아리따운 여인 안야에 대한 솔직한 단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락에는 그 안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분명히 책은 순서대로 읽어야 할 텐데, 이렇게 복잡하니 책을 읽다가 도중에 맥이 끊기기가 일쑤였다. 물론, 나중에 다시 읽으려면 앞장을 되짚어 봐야 하는 수고도 감수해야 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소설가인 세뇨르 C는 어느 날 우연히 세탁실에서 필리핀 출신의 안야와 만나게 되고,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물론 속세인들이 상상하는 그런 추잡한 유혹 대신, 세뇨르 C는 안야에게 자신이 구술하는 테이프와 노트를 보고 타자를 부탁한다. 여기에는 시간당 보통보다 갑절이나 되는 보수라는 유혹이 덧붙여져 있다. 투자 상담가인 앨런과 더불어 사는 안야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한편, 고아로 자라 자수성가한 중년의 앨런은 안야의 디스켓을 통해 세뇨르 C의 컴퓨터에 스파이 프로그램을 깔아 세뇨르 C의 재정상태를 알게 되고, 몰래 그의 돈을 이용해서 수익을 올릴 궁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는 결국 안야와의 파국을 불러오게 되는데...

리뷰를 쓰다 보니. 왜 미스터 쿳시는 이런 복잡한 배열을 구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장으로 구성해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전혀 무리가 없었을 텐데 굳이 이런 복잡한 방식으로 독자들의 정신세계를 분열시켰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실험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이런 나의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첫 번째 단락마다 등장하는 칼럼을 통해 조금이나마 존 쿳시의 정치에 대한 생각들을 유추해 볼 수가 있었다. 음악, 아프리카 침략, 국가의 기원, 아나키즘 그리고 관타나모 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이야기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독자들의 사고에 조용히 노크한다.

저명한 노벨상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성과 씹히지 않는 생쌀 같은 개념들의 군무(群舞)에 조금은 실의에 빠졌다. 하긴 삶에 있어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하는 위로로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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