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 Waltz with Bashi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참 공교롭다. 어제 레바논 내전의 참상을 그린 라지 하위의 <드니로의 게임>을 읽었는데 오늘은 역시 같은 주제를 다룬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춤을>이란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봤다. 장장 4년에 걸친 긴 시간과 이스라엘,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 4개국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는 질주하는 수많은 개들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의 감독이자 화자인 아리 폴만은 20년 전 기억을 되찾기 위해 당시 동료들을 찾아 기억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기 시작한다. 때는 1982년, 19살의 아리 폴만은 이스라엘 보병 소속으로 소위 레바논 전쟁에 투입된다. 그에게 당시의 기억들을 악몽이었고, 아무 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다. 아마도 의도된 선택적 기억상실이라고 해야 할까. 그 중심에는 같은 해 9월에 벌어진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이 자리하고 있다.

배를 타고 시돈 해안에 내리자마자 폴만과 동료들을 사방에서 총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보이지도 않는 적들을 응사를 해댄다. 그들의 갈겨대는 소총의 사격 소리는 마치 사방에 적들에게 둘러싸인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이, 그 나라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단발마적 비명처럼 들린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옛 동료들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리 폴만과 함께 전개된다. 탱크 병으로 레바논 전쟁에 투입되었던 로니로부터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들은 마치 소풍가는 행렬처럼 탱크에 올라타고 레바논에 들어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뜨거운 소총세례와 연달아 폭발하는 RPG 공격이었다. 그 와중에서 동료들과 함께 도망치던 로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고, 내내 비겁하게 동료들을 내버리고 자신만 살아남게 되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다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항상 파출리라는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는 프렌켈. 그들은 레바논 테러분자들을 색출해서 공격한다는 미명 아래,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를 오폭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들을 오인사격으로 빼앗는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투입된 폴만과 그의 동료들은 도시의 도처에서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암살당한 바시르 게마엘의 사진들을 보게 된다. 저격병들에게 노출된 폴만 그룹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을 때, 프렌켈은 동료의 기관총을 빼앗아 들고 뛰쳐나가 왈츠를 추듯 그렇게 난사를 해댄다. 광기에 사로잡힌 전쟁 가운데, 온 정신을 유지하는 게 미친 일이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지도자의 암살에 격분한 기독교계 민병대인 팔랑헤당원들은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난입을 해서 9월 16일에서부터 18일까지 3일 동안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난민촌을 파괴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민들을(최대 3,500명) 학살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이들의 행동을 묵인한 이스라엘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언론인인 론 벤-이샤이가 이스라엘 사령관에게 항의를 해보지만 별무소용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간의 애니메이션 대신 당시의 실제 필름들을 보여 주면서 조용히 막을 내린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나치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저지른 홀로코스트와 팔랑헤당원들과 이스라엘의 합작으로 자행된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중첩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자신들은 언제나 희생자였다고 주장해 왔지만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잃고 타국으로 쫓겨난 신세의 팔레스타인들에겐 그들이야말로 폭압적인 침략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이스라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중부유럽의 죽음의 캠프에서 대대적인 홀로코스트가 진행되고 있을 때, 서방국가들이 외면했다는 비난을 자신 있게 할 수가 있을까.

마치 베트남전에서 무엇 때문에 타국에서 싸우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무수히 죽어갔던 미군 병사들처럼 1980년대 이스라엘 병사들은 레바논에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적이 누구인지, 왜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바시르와 왈츠를>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폴만들에게 유일한 삶의 목적은 아수라장 같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 뿐이다. 물론 그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다.

건국 이래 계속해서 전시 상황 아래 있어온 이스라엘은 마치 병영국가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총탄이 빗발치는 레바논 전쟁에서 휴가를 받아 돌아온 폴만은, 자신을 빼고서는 너무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을 걷어찬 애인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며, 나이트클럽에서 그 또래의 젊은이들은 무아지경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그를 빼놓고서는 너무나도 정상적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레바논의 어느 농장을 순찰 중이던 폴만그룹에게 RPG 공격을 한 소년들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중 그 유명한 <라르고> 선율이 조용하게 흐르는 가운데, 매복한 두 명의 소년들은 이스라엘 장갑차에 대한 RPG 공격을 감행한다. 모든 것이 슬로 모션으로 처리되면서, 본능적으로 응사를 해대는 이스라엘 병사들. 이처럼 평화스러운 광경 속에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과의 대비는 너무나 비극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자신들의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땅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마 그들에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민족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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