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 / 도솔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사랑하는 것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역시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힐먼은 융 심리학을 다년간 연구한 이답게, 인간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적으로 형성된 전쟁에 대한 불가해한 사랑과 숭배에 대한 원형(archetype)적 분석을 통해 전쟁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군사 전략가였던 클라우제비츠가 선언했듯이 전쟁은 최고의 정치행위로써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인류의 전 시기를 통틀어 그 어느 시대에도 전쟁이 전무했던 시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전쟁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착안을 해서 ‘전쟁은 정상적이다’라는 자신의 명제를 제시한다.

누구나 전쟁을 싫어하지만 그 반대로 전쟁을 사랑하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류학자인 수잔 손택은 전쟁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전쟁에 대한 몰이해를 단순한 인식론에 기인한 방법론의 부재로 볼 것이 아니라, 고대의 신화에 의거해서 분석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 전쟁의 필연적 성격인 비인간적 성질이 나열된다. 개개인의 전투력이 중시되던 고대의 전쟁에서, 대량생산된 최첨단 무기로 무장된 전쟁은 미디어를 통해 수치화된 데이터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사선을 넘는 전쟁터에서의 치열함은 엄청난 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숫자들로 치환하면서 탈인간화의 과정을 거쳐 비인간화에 이르게 된다. 실제 전장에서 발생하는 전투신경증으로 인한 인간 구조의 손상은 그전과 그 이후를 명백하게 구별한다. 전쟁에서 흔히 발생하게 되는 성적 폭력과 잔혹행위들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전쟁터의 병사들이 행사하는 무기들 역시 전쟁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전쟁의 숭고미에 대해 힐먼은 다시 신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전쟁의 신인 아레스/마르스와 아름다움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 쌍으로 존재한다. 멋지게 차려 입은 채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죽음의 전쟁터로 돌진하는 기병대 병사들의 돌격은 장엄 그 자체로 묘사가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그 죽음의 공포 한 가운데 바로 지고한 아름다운 숭고함이 인간의 이해와 상상을 초월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 이제 융의 분석 심리적 전쟁에 대한 고찰은 잠시 뒤로 하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제어할 수 없는 총기문화를 저자는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건국과 더불어 총기문화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고 총기옹호론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 내에 총기문화가 자리 잡은 건 19세기 남북전쟁을 통해서였다.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에서 무기를 직접 다뤘었고, 총기에 의한 폭력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디어를 통해 방송되는 섹스와 폭력적인 이미지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낳는다는 주장에 대해 제임스 힐먼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들어가면서 반박한다. 텔레비전 같은 영상매체가 없었던 미국 독립초기의 식민주의자들이나 고대의 전사들이 현대인들보다 덜 폭력적이었던가? 폭력적 비디오 게임이라고는 생전 구경도 채 하지 못한 아프리카의 소년병들의 잔혹행위에 대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종교는 전쟁이다’라는 명제로 귀결을 짓는다. 신화의 신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지만, 종교는 다르다.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뿌리가 하나인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적대하는 양 진영의 병사들이 모두 같은 이름의 하나님을 외치면서 죽이고 죽어갔다.

지구상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인 미국의 예는 또 어떠한가. 많은 이들이 호주가 영국의 유형수들이 건국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미국의 역사 또한 만만치 않다. 한나 아렌트의 언급대로 폭력은 수단에 좌우되지만 우선적으로 그 충동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로 일신교적 축자주의에 근거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아마겟돈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전쟁에 대한 입장은 모순 그 자체이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죽음과 파괴에 대해서는 혐오하면서도,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이라는 전우애(comradeship) 같은 숭고미 혹은 그 전쟁의 일상성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힐먼의 주장대로, 전쟁의 신과 미의 여신이 공존하는 원형의 틀(patterns) 속에서 전쟁의 심층 심리에 대한 이러한 신화, 철학 그리고 신학적 접근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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