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팩션이란 장르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만남은 사실이 주는 리얼리즘과 허구에서 비롯된 흥미가 교묘하게 어디에선가 그 접점을 이룬다.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보스턴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는 그래서 더더욱 흥미롭다.

주인공 옥타비안(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영어식 이름이다)은 아프리카 공주 출신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가 13살 때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어머니는 영국의 식민지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석학협회 소속의 조사이스 기트니의 보호를 받고 있다.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는 흑인이다, 당시 대륙의 흑인들은 모두 노예로 생각되지만 이 기트니의 저택에서 그들은 후한 대접을 받는다.

옥타비안은 마치 부유층 자제들이 받는 교육과 같은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모차르트와 같은 유럽의 고전 음악 교육도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배설물을 금접시에 달아 기록하는 것과 같은 평범하지 않는 실험도 수행하고 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는 실험에 의문을 느낀 옥타비안은 자신에게 금지된 비밀을 깨닫게 된다. 신화에 등장하는 금기들은 예외 없이 깨지는 것처럼, 옥타비안 역시 기트니 씨의 금기[taboo]를 깨면서 신화적 결합을 이룬다.

그 비밀은 바로 식민지 치하의 지배층들이 효과적인 식민지 경영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 노예들을 상대로 아프리카계의 열등성을 입증하기 위해 옥타비안을 그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 와중에, 물주인 첼소프 백작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면서 새로운 후원자로 샤프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 비인간적인 실험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책의 부제로 달린 것처럼, 소위 천연두 파티를 통해 창궐하는 천연두에 대한 예방책으로 살을 째고 천연두 균을 몸에 투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옥타비안은 사랑하는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를 잃고, 결국 준노예상태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자신의 삶의 존재에 대한 극도의 절망감에 빠진 옥타비안은 도망노예로 전전긍긍하던 중에 영국의 폭정에 항거해서 봉기한 애국파 민병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한 이들의 집요한 추격 끝에 결국 다시 사로잡히게 되면서, 이 기구한 젊은이의 운명은 다시 한 번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소설은 상당히 정치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은 전제정치의 폭거에 대항해서 인류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뒷면에는 식민지인들의 경제적 이권과 식민지 경영을 위한 노예 노동력 착취 그리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자유와 사유재산의 보장을 외쳤지만, 그 자유는 어디까지나 백인 지배계층에게만 해당된 이야기고, 같은 인간이었던 흑인노예들에게는 별개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인들의 사유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작가 매튜 토빈 앤더슨은 말미 부분에서 다시 잡혀온 옥타비안에게 일장연설을 하는 샤프의 궤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샤프의 말들은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옥타비안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철가면을 씌워 재갈을 물리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 설득과 대화로 상대방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자들의 전가의 보도인 물리적 폭력이라는 방식이 이 장면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된다.

자본주의에 천착한 아메리카 식민지의 부르주아지들은,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된 기독교까지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노예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인종차별주의는 오늘날까지도 다른 인종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고착시키고,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다.

소설에 나오는 미국석학협회가 이성적 탐구라는 명목으로 실시한 생물학적 실험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그들이 열등하다고 주장했던 유대인들을 상대로 실시했던 만행을 연상시켰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과 충돌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옥타비안이 자신이 배운 교육을 통해, 자아를 깨닫게 되고 또 형처럼 자신을 도와주던 프로 보노를 통해 자신이 처해 있는 비참한 상태를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M.T. 앤더슨은 이런 계몽시대의 유산들을, 옥타비안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유감없이 분출시키고 있었다. 계속해서 출간될 2권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한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게 된 옥타비안의 종횡무진 활약이 펼쳐질 것을 예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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