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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
손성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서울신문사 기자 출신의 손성진 씨가 지난 우리네 삶의 흔적들을 담은 책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바로 정(情)이었다. 이제는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쫀드기, 뽑기 같은 불량식품 먹거리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박가분-구리모 그리고 흑백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세기 대한민국 풍속사의 변천을 자세하게 그려냈다.
지난 세기 후반, 당시 지상과제였던 경제발전은 전근대적이었던 우리네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동시에 어쩌면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정서들도 그 삶의 모습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불량식품 이야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을 보다 말고, 교직에 계셨던 어머니에게 물어 보면서 기억이 나지 않거나 하는 부분들에 대해 보강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가령 쫀드기나 뽑기 같은 불량식품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직접 체험해 보았으니 안다고 하더라도, 송충이 잡기나 쥐를 잡아서 쥐꼬리 잘라오기 같은 숙제는 알 수가 없었는데 어머니가 상세한 설명을 달아 주셔서 이해가 쉽게 갔다. 풀빵, 붕어빵 그리고 국화빵이 모두 한 형제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트렌드세터 에피소드들 가운데서는 장발, 미니스커트 그리고 통금이라는 주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판을 치던 가운데, 독재의 영속화를 위협한 것은 바로 젊은이들의 자유정신이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억압받아온 젊은 영혼들은 남자들은 장발, 그리고 여자들은 복장으로 자신들의 시대정신을 표현해냈다. 하지만 독재정권 답게, 억압적으로 이런 시대정신을 억누르려는 사고는 공권력을 동원해서 단속해서 결국에는 즉심, 입건 심지어는 구속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국민들의 기본권마저 침해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발상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통금 역시 미군정과 한국전쟁으로 장장 37년간이나 시민들의 자유를 옥죄어왔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통금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통금 사이렌이 울리면 황급하게 귀가하던 어른들이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서 마치 스파이더맨마냥 슬금슬금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통기타와 포크송이 주류를 이루던 70년대 음악계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었다. 그 시절 오디오는 정말 귀한 아이템이었다. 실용을 추구하던 우리 부모님에게 오디오 컴포넌트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었다. 아마 그 시절에 지금과 같은 홈시어터 시스템을 구축할 수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하긴 그 시절에는 조그만 카세트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금지곡에 얽힌 이야기들은 역시 정치와 관련되어져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서 해외의 수많은 명곡들을 접할 수가 없었다. 유신독재 정권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행복해야만 했는지, 레드컴플렉스 때문에 ‘붉은’이란 단어에 극도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다. 표지에 공산당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비틀즈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음반도 통째로 금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은이가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은 그게 아니었다. 비록 가난하고 못 먹고, 못 입고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었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사람냄새가 나는 삶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진행된 핵가족화, 개인주의는 기존의 그런 공동체적인 우리 전통의 삶의 형태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없는 것 없이 모두 갖춰진 현대적 삶은 그 시절의 정(情)을 담보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이렇게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정신은 날로 피폐해져 가는 것만 같다. 우리보다 반세기 전에 이미 이런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서구인들의 깨달음에, 우리는 이제서야 조금씩 접근해 가고 있는게 아닐까. 한 세기에 걸친 옛 시절에 대한 풍속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