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1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재만화나 시리즈의 특성은 바로 캐릭터의 활용에 있지 않을까 싶다. <중판출래> 11권 첫 번째 주인공은 코토칸 <바이브스>의 에이스 타카하타 잇센 작가다.

 

모두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전 애인이었던 린네 씨가 떠난 다음, 타카하타는 조용하게 만화 창작에 전념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그의 심장에 파문이 이는 발생했으니, 자신의 역작 <츠노히메사마>의 연극 무대에서 선 배우 미츠키 와카가 타카하타의 작업실에 방문한 것이다.

 

보조MC로 출연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반강제로 하차하게 된 미츠키는 타카하타에게 인간적 조언을 구하고, 그 둘의 사진이 파파라치들에게 찍힌다. 세상 태평한 타카하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이제 막 배우의 세계에 진입한 미츠키에게는 치명적인 스캔들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

 

뭐 에피소드는 그럭저럭 좋은 방식으로 마무리되는데, 타인의 사생활에 집착하는 갓차 미디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마츠다 나오코 작가의 주제 의식에 감탄할 수가 있었다.

 

다음은 연재가 중단된 <애니멀 정션>의 작가 후카와 유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에피소드의 이면에는 전통적 양면 방식으로 구성된 양면 종이책에서 간편하게 휴대폰으로 스크롤해서 내려 볼 수 있는 전자책으로의 이행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다.

 

여전히 올드 스쿨타입의 독자는 전자책은 멀리하고 대신 종이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책쟁이로서의 보수적 성향 때문일까. 아무리 전자책이 편리하다고 하더라도, 종이책이 주는 그런 질감이나 물성을 대신할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게는 여전히 먼 당신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전자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재 중단으로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있는 작가 후카와 유의 편집담당자는 기존의 쿠로사와의 라멘 동지인 미부 씨에서 쿠로사와로 바뀐다. 연재 중단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후카와 씨에게 기회가 왔으니 바로 전자책으로 1권이 무료 서비스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우리로 치면 작년 브브걸의 <롤린> 같은 역주행 신화라고나 할까? 일본과 같은 만화 시장의 부재와 새로운 작가 개발이 거의 정체되다시피한 우리로서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쿠로사와가 내뿜는 건강한 에너지를 듬뿍 받아 기존의 반항기 넘치는 불량소녀 이미지를 벗고 편집자로서의 꿈을 꾸게 된 아유의 귀환도 명랑만화의 흐름에 편승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피브 전이>의 나카타 하쿠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인간 세계에 조금씩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창작은 결국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일 수밖에 없다. 편집자의 역량은 창작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1에서 10으로, 10에서 100으로 튀기는 역할이다. 다만 무(0)에서 1로 넘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화에서도 보여지듯이, 팬들의 지지와 응원이 창작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도. 다만 그 힘과 에너지가 창작자에게 전용되어 어긋나게 되면 서로 마이너스가 되지나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더불어 삐딱선을 타던 아유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도 명랑만화다운 설정이 아닌가 싶다. 그 시절이 되짚어 보면,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자극과 길라잡이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채찍질만으로는 꿈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모든 것을 만화에 걸고 전력투구하는 <중쇄출래>에 등장하는 신예 만화가들처럼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그걸 미처 몰랐던 게 진짜 문제가 아니었나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니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평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찾는 그런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