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들의 반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안경미 그림, 김목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칠레 출신의 경계인 아리엘 도르프만이 1986년에 발표한 <토끼들의 반란>을 읽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토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도르프만의 토끼가 피노체트 정권의 독재 아래 고사 위기에 빠진 칠레의 민주주의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 아무리 탄압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칠레 민중의 투쟁으로 해석했다.

 

늑대 중의 늑대는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다. 칠레식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기득권층과 종교계 그리고 외세의 지원을 등에 업은 늑대들은 토끼의 존재 자체를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토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늑대들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토끼들은 늑대들이 지닌 권력을 조롱하듯, 사방에서 출몰한다. 아니 어쩌면 도르프만은 칠레 민중을 의인화한 토끼의 끈질긴 생명력에 주안점을 두고 이 성인들을 위한 우화를 쓴 게 아닐까.

 

나의 해석에 집중하다 보니 초반의 전개를 까먹어 버렸다. 늑대 두목은 토끼들의 땅을 점령하고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건 누가 봐도, 독재자 피노체트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그리고 늑대 왕은 독재자답게 검열을 시작했고, ‘솜꼬리토끼란 녀석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이야말로 독재가 지닌 역설이 아닐까.

 

원숭이 사진사가 찍는 사진마다 늑대 왕이 그렇게 부인하고 싶었던 솜꼬리토끼들이 출몰한다. 이에 왕실 고문인 늙은 회색 여우는 사진을 조작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사실의 부인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가짜 뉴스 전파에 여념이 없는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있는 미디어의 현실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다.

 

원숭이 사진사가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사진에 등장하는 토끼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늑대 왕은 높은 왕좌에 올라 토끼들에 대한 감시해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왕실 고문인 회색 여우는 원숭이 사진사에게 사진에 나타나내는 토끼 녀석들을 용액을 사용해 지우라고 명령한다. 그런다고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도르프만은 독재자가 자행하는 폭압적인 통치라는 역경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언젠가 회복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칠레 민중들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적으로 늑대들을 압도한 토끼 군단은 늑대 왕이 앉은 왕좌를 물어뜯고, 씹고, 갉아 먹고 결국 왕과 일당을 전복시켰다. 그리고 다시 토끼들의 세상이 도래했다.

 

경계인 아리엘 도르프만은 <토끼들의 반란>에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흉포한 늑대 왕에 대항할 아무 힘도 보이는 토끼들이 반란이 성공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낙수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를 향한 다수 칠레 민중들의 열망은 원숭이 사진사와 용액을 동원한 눈속임이나 사술로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늑대와 토끼의 대결에서, 토끼 군단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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