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정보들은 모두 인그램에서 얻는 것 같다.

 

BLM으로 미국 사회가 도가니탕처럼 펄펄 끓는 마당에 이번에는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하이츠에서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이 화제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어떤 필리핀계 미국인 아저씨가 퍼시픽 하이츠의 어느 집 담벼락에 스텐실로 Black Lives Matter 구호를 쓰고 있었다.

 

산책을 하던 백인 커플이 이 남자에게 그 담벼락이 사유재산이라고 주의를 준다. 그네들의 말투는 아주 정중하다. 아마 자신들은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BLM 구호를 쓰는 건 쓰는 이의 자유지만, 남의 사유재산은 침해하지 말라는 거다.

 

촬영하던 남자가 경찰을 부르던가 아니면 주인에게 말하라고 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여성의 패착이 등장한다. 자신이 집주인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여성은 경찰을 불렀고, 출동한 경찰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가 버린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나중에 들어난 사실은 촬영자 제임스 후아닐로 씨가 바로 샌프란시스코 고급 주택지 퍼시픽 하이츠의 문제의 집에 살던 집주인이라는 점이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은 리자 알렉산더로 화장품 회사 <라페이스>의 사장이라고 한다. 곁에 있던 남성은 그녀의 남편이었고.

 

결론적으로 말해 리자 알렉산더는 진짜 집주인인 제임스 후아닐로 씨를 알지도 못했고(거짓말이었다!!!) 인종적 편견에 사로 잡혀 지난 18년 동안 그 집에 살던 집주인을 모욕했던 것이다. 참고로 후아닐로 아저씨는 독 워킹 사업(dog-walking)을 하시는 분이란다.

 

또 한 가지, 이 커플이 내내 떠들던 사유지(private property)란 말도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천국이라는 이놈의 사유지/사유재산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그런 것인가 보다. 공공성이나 정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렇다면 이 사건의 후과는 어땠을까? 자신의 인종차별 영상이 만방에 영구박제된 <라페이스>의 사장은 그야말로 밥줄이 끊기게 생겼다. 라페이스의 파트너들은 사장의 인종차별을 이유로 들어 모든 협력관계를 단호하게 끊어 버렸다. 어느 누가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 사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만든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다니겠는가. 후회 막급한 리자 알렉산더는 제임스 후아닐로 씨에게 뒤늦은 사과를 한다며 쑈에 나섰으나, 엎어진 물을 담을 수 없는 법. 라페이스의 파트너였던 버치박스 같은 회사가 협력관계를 끊지 않았더라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나섰을까? 천민자본주의를 숭상하는 이들에겐 돈줄이 막히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대놓고 악다구니를 해가며 인종차별을 하는 이들보다 리자 알렉산더처럼 평조 톤을 유지해 가면서, 교양 있는 어휘로 시전하는 연성화된 인종차별이 더 무섭다는 걸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뱀다리] 다만 그녀가 새로운 캐런이라는 표현은 좀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미디어에서 새로운 먹잇감에 달려들어 프레이밍하는 짓거리는 어디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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