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 15개 언어를 구사하며 세계를 누빈 위대한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숭고한 이야기
게리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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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스타에서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다. 우리가 즐기는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몬산토에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양고추가 국산이 아니었나? 그 이유는 청양고추의 씨앗 종자를 몬산토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몬산토를 사들인 독일의 제약 기업인 바이엘로 돈이 흘러간다는 사실이었다. 글로벌 시대의 웃지 못 할 풍경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접한 청양고추 이야기가 때마침 읽기 시작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가 다루는 주제와 일맥상통했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이미 식물 육종 연구에 있어 선구자였던 니콜라이 바빌로프 박사의 연구 행적과 식물다양성이 인류를 각종 자연재해가 야기하는 기아로부터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79년 전, 바빌로프 연구소가 있던 레닌그라드는 나치 독일군의 맹공격 앞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위대한 소련의 식물 육종 연구가 바빌로프의 노력으로 세워진 세계 각처에서 모아온 귀중한 씨앗들을 보관하던 바빌로프 연구소 역시 독일군의 포화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1941년 겨울은 그 어느 겨울보다 추웠고, 포위당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기아에 시달렸다. 연구소 설립자인 바빌로프 박사는 독재자의 눈 밖에 나 사라토프 감옥에 갇힌 상태였고, 그의 남은 동료들은 연구소에서 귀중한 씨앗들을 지키다 산화해 갔다. 첫 스토리부터 짜릿하지 않은가.

 

제정 러시아 시절이었던 18871125, 모스크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1910년 모스크바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평생의 과업이었던 식물 육종 연구에 투신한다. 그의 행적을 읽으면서 느낀 건 바빌로프가 여느 책상머리에만 앉아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과 달리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실천형 연구자였다는 점이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연구장비가 바로 노새였다는 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파미르 고원을 필두로 해서 전 세계가 바빌로프 박사의 연구 무대였다. 책의 후반에 나오는 대로, 볼셰비키 혁명으로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유물론적 사고와 바로 성과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년간의 종자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무시하고 최대한의 빠른 성과만을 바빌로프 박사에게 요구했다. 그런 조급증이야말로 1930년 초반, 소련을 휩쓴 대기근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굶어 죽어간 비극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종자 개발을 위해서는 8~9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소련의 정치지도부들은 그런 과학적 절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당장 인민들과 서구 자본주의 라이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성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바빌로프 박사의 비극은 시작부터 이런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빌로프의 탁월한 연구 성과는 개발과 자본주의적 성과가 판을 치고 있는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효과적으로 보이는 단일경작이 얼마나 위험한 지에 대해 바빌로프 박사는 잘 알고 있었다. 작물 재배의 다양성이야말로 병충해나 대기근에 무엇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처럼 바빌로프 박사의 식물 육종 연구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실험실에서 다양한 연구로 새로운 씨앗을 개발하는 연구자들도 인류의 식량안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식량안보의 전사들은 바로 농부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연구 결과라도 필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말이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3.0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최첨단 기술과 농법으로 무장한 연구자들은 종종 그런 현장의 농부들을 무시할 때가 많지만, 조상 대대로 전수되어져온 그들만의 노하우야말로 절망적인 대기근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세계 각처에서 입증되었다.

 

1980년대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를 덮친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했다. 이에 세계의 내로라하는 연구소들이 병충해와 가뭄에 효과적인 종자들로 위기를 돌파해 보려고 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서구의 선진 농법에는 비용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다. 다량의 물이 필요한 관개농법이 아프리카 같은 건조 지역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수로 건설이 새로운 재앙으로 이어지기도 하지 않았던가.

 

자그마치 15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현지들의 문화 풍습을 습득하는데 주력했던 바빌로프 박사는 현지의 다양한 문화적 다양성이야말로 작물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점도 일찍이 파악했다. 현지의 다양한 작물과의 혼종 재배, 단일경작 대신 혼작이야말로 인류의 식량안보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그는 파악했다. 보다 생산하기 쉬운 단일작품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대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연을 파괴해야만 했다, 친자연적인 방식의 재래식 작물재배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도 바빌로프는 강조한다. 아마존 정글에서 요즘처럼 대규모 개발로 경작지를 늘리는 대신 그야말로 자연에 묻어가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의 효율성에 주목하지 않았던가.

 

바빌로프 박사는 식물의 육종연구와 씨앗 확보를 위해 나선 연구여행에서 불안정한 정세와 소비에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해를 사고, 때로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인류를 위한 그의 연구의 진정한 방해자는 조국 소련과 독재자 스탈린이었다. 자고로 선지자는 고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했던가. 시간 부족으로 거의 날림으로 진행된 라틴아메리카 연구여행은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집단농장 시스템으로 1932년과 1933년의 대기근에 대처하지 못한, 소련 정부와 스탈린은 희생양으로 바빌로프 박사를 삼았다.

 

스탈린의 총애를 받던 사이비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이론이나 연구 성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바빌로프는 거의 모든 면에서 충돌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과학적 주제에 대한 논쟁에서 리센코는 바빌로프를 압도할 수 없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바빌로프는 영국과 미국 정부를 위해 첩보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비공개재판에서 총살형을 언도받았다. 그 후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사라토프 노동수용소에 수용된 바빌로프는 1943126, 만성적 기아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마녀의 연쇄 독서로 만나게 된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내가 올해 상반기에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고 싶다. 개인의 유익이나 영광이 아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니콜라이 바빌로프 박사의 일대기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식량이 부족해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인류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 충분하게 공급되어야 할 자원 공급의 문제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식량민주주의와 농민의 권리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무엇보다 미래의 인류에게 전해 주어야 할 소중한 씨앗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초여름 접시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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