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눈썹
손석춘 지음 / 단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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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이 책을 집어든 게 실수였다. 요즘 도끼 선생 챌린지에, 마의 산에 오르는 등 고전 읽기를 하던 차에 문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찾게 되더라. 지난달에 코로나 사태로 다시 도서관이 휴관하기 전에 빌려온 책이 바로 손석춘 작가의 <호랑이 눈썹>이었다. 진보 논객으로 알고 있던 저자의 무려 10번째 소설이란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강연호다. 직업 군인으로 28년을 복무한 연천의 호랑이는 뼛속까지 투철한 반공투사이며, 열혈 태극기 부대원이다. 고희를 넘긴 태극기 전사가 빛고을을 찾는 장면으로 아마 소설은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 비몽사몽간에 읽다 보니 내용이 오락가락한다. 물론 소설을 읽다 각성되어 밤잠을 설친 건 비밀이 아니다.

 

1948, 그러니까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뒤 태어난 연천의 호랑이는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공산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돌아가신 조상님의 자랑스러운 후손이었다. 다만, 부모님의 부재로 할머니 손에 키워져야 했다. 대학에 가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강연호는 집안 사정으로 진학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미국은 멀리 베트남에서 통킹만 사건으로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하게 되었고, 군인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던 한국에서도 혈맹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려 3개 부대를 파견하게 되었다.

 

아무런 배움도 가진 것도 없던 연천의 호랑이는 기회의 땅 월남으로 가, 조국에도 봉사하고 돈도 벌어 오겠다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월남행 배에 오른다.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전쟁이었다. 베트남에서 청년 연호는 미친 맹호로 변신한다. 살인과 폭행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양민과 게릴라를 구분하는 건 청년 병사들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베트남은 연호에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의 첫 번째 살인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림자처럼 그를 쫓기 시작한다.

 

하루에 2명씩 전사자가 나왔다는 죽음의 땅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귀국선에 탄 연호를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가혹했다.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자신이 애써 번 돈은 대처에 사는 고모가 모두 가로채 버렸다. 월남에서 리설 웨폰이 되어 돌아온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직업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연호는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정희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가 싶었으나 그것 또한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아내에게 살짝 드러냈지만, 정희는 전쟁터에서 다 그럴 수 있지 않았냐며 적당하게 봉합한다. 연호의 자기기만적 삶이 시작되는 게 바로 이 순간이었던가. 그러면서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된 연호는 두 번째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가정을 멀리하고 자신을 혹독하게 만들기 위해 특전사에 자원해서 11공수의 유능한 부사관이 되었다. 삼십대 초반의 강연호가 치른 두 번째 전쟁은 19805월의 빛고을이었다. 손석춘 작가는 그동안 이러저러한 채널로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뜨거웠던 그해 5월의 광주를 가해자의 시선에서 재구성한다. 첫 번째 전쟁에서도 그렇지만 두 번째 전쟁 역시 연천의 호랑이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겨 주었다. 그나마 월남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의 전쟁이었다면, 이번에는 자기와 같은 말을 쓰는 동족을 상대로 한 그런 전쟁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처럼 연호는 역사의 현장에 머물렀다. 연호가 가해자의 입장이었다면, 그의 아내 정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공고해 보이던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누구나 민주주의의 봄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로 대변되는 신군부 세력을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저항에 나선 빛고을 시민들을 무차별 진압에 나선다. 그리고 그 때 동원된 사람이 바로 연천의 호랑이였다.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있던 연호는 개인적 복수와 무고한 양민들을 조준 사격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고민한다.

 

자신이 모시던 대대장들이 연달아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좋았던 시절이 끝났음을 깨달은 연호는 28년 동안의 기나긴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 한탄강으로 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연천의 호랑이가 전쟁터에서 치른 업보의 대가는 혹독했다. 우선 포천 부잣집으로 시집간 지혜가 IMF의 여파로 집안이 거덜 난 신랑 신증산의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서울에 나가 성공한 아들 지만은 광화문에 있는 어느 신문사에 취직해 시골의 가족을 등진다. 딸 지혜가 남긴 손주들인 강산과 슬기 키우던 중 비보가 날아들고, 생모가 남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연천의 호랑이는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참전하게 된 세 번째 전쟁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그런 전쟁이었다.

 

더 상세한 디테일도 많지만, 조국 근대화에 있어 그 누구보다 희생한 세대이지만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게 강연호로 대변되는 세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그의 말대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베트남의 밀림에서 소총을 들고 적군과 싸우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문에 투신했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역사의 혹독한 재평가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방에서 편안하게 있던 이들이 조국 근대화의 과실을 독점했다는 울분이 치솟아 오른다. 서북청년단이었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삶이 가짜 뉴스 생산에 부역한 아들 지만의 그것과 묘하게 공명을 이룬다는 지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나마 강연호 할아버지는 생떼 같은 손자가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죽게 되자 비로소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자아 철민과 유일하게 남은 혈육 슬기의 도움으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극복에 나서는 장면으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소설 <호랑이 눈썹>은 역사적 사실을 질료로 삼아 잘 만든 소설이 틀림없다. 하지만 강연호라는 주인공이 감당해야 하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안의 사람들도 이렇게 화합하지 못하는 마당에,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지닌 이들이 화합을 이루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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