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중에 미국에서 고질적인 인종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번에는 1992년 로드니 킹 사건 이후, 미 전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연방차원 군투입이 고려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전 세계 최대 코로나 사태의 피해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수는 이미 지난달에 10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데일리 카운트를 살펴보니 106,195명이다. 동일 생활권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뉴저지의 사망자수가 41,629명으로 미국 전체 사망자수의 39%를 차지한다.


참조 사이트 :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country/us/

 

베트남전에서 죽은 미국 사망자수가 대략 58,000명 정도라고 하는데, 코로나만으로 전쟁에 버금가는 그런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문제는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로 자그마치 4,0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수많은 국내 일자리들을 창출했다고 선전해 왔는데 11월 재선거를 앞두고 단 몇 달 만에 자신이 벌어 놓은 포인트들을 모조리 까먹어 버렸다.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을 상대로 무난한 재선이 예상되었는데, 최근에 벌어진 코로나 사태, 대중국 이슈, 실업문제 그리고 이제는 내전에 가까운 인종문제까지 터지면서 미국이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삼중고의 높은 파고에 재선은 물 건너가는 그런 분위기다.



지난 525,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데릭 쇼빈(44)3명의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46)를 범죄혐의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846초 동안 무릎으로 그의 목을 짓눌렀고 수차례 숨을 쉴 수 없다고 항의하던 플로이드 씨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죽었다. 주변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했지만 데릭 쇼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6년 전에도 비슷한 경우로 에릭 가너(43)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불법으로 담배를 판다는 이유로 백인 경찰에게 목조르기를 당해 숨졌다. 2013년에 시작된 “Black Lives Matter” 해시태그 운동은 2014년 마이클 브라운과 에릭 가너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총기사건이나 무장강도 같은 중범죄도 아닌 경범죄로 다루어질 수 있는 사건들에 인종문제가 개입되면 백인경찰들은 필요 이상으로 과잉진압에 나서게 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계급 간의 갈등과 인종간의 혐오를 조장하는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이미 그전에도 그랬지만 미국의 통합은 물건너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지도자로서 트럼프는 인종간의 화합을 추구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그런 모습이라는 느낌이다.



2차세계대전 이래 미국은 막강한 제조업과 소프트 파워로 공고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적인 것은 세계의 규범이 되었다. 매카시즘으로 약간의 균열이 가긴 했지만, 다른 목소리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나라였다.

 

하지만 2020년 미국의 모습이 과연 그러한가. 우선 코로나 사태에 즈음해서 미국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정쟁에는 피아를 식별해서 강력한 우군을 형성해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장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공화당은 이제 트럼프가 확실하게 장악했다),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배제의 정치를 구사했다. 어느 정치 평론가는 미국이 이제 더 이상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자조적 논평을 할 정도가 되었다.

 

기존의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소위 미국적 가치들은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버린 흘러간 상품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자정 작용을 기대할 수 있었던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은 혐오와 배제 그리고 증오를 조장하는 리더십 때문에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그렇게 고삐가 풀리자 실패에 대한 희생양을 찾기 위한 사냥이 시작되었고, 비이성적 광기의 무대가 열렸다. 뉴욕의 코로나 사태에서도 많은 수의 희생자들이 생존을 위한 당장의 노동에 내몰렸던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들에게 자가격리나 재택근무는 선택이 아닌 사치였을 뿐이다. 자본주의 3.0 시대에도 여전히 실업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느 흑인 소년이 “Am I Next?”라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에서 백인 여자 친구와 함게 차를 타고 가던 흑인 청년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차를 세우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백인 여친이 거칠게 항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백인 여성에게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에 크리스는 그게 뭐 대수냐며 자신의 신분증을 백인 경찰에게 제시한다. 영화의 짧은 한 장면이었지만 그렇게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일상화된 증거이리라.

 

75세 할머니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보고서, 인종차별은 마음의 문제라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수만은 없어서 시위에 나섰다는 기사에 마음이 짠했다. 코로나 위기로 모든 이들이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불의에 저항하는 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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