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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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들도 꾸준하게 사들이고 있지만, 근래 들어서는 예전에 사둔 책들을 주로 읽고 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필두로 해서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이어 독일 출신 작가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도 읽었다. 책이 누렇게 변색이 됐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12년 전에 이 책을 샀단 말인가. 돈 주고 산 책은 반드시 읽는다.

 

오래 전, 수학을 전공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가우스에 대한 칭찬이 대단했다. 수학의 천재라고 했던가. 원체 수하고는 친하지가 않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하지만 다니엘 켈만이 소환해낸 가우스 그리고 훔볼트는 18세기 슈퍼스타 같은 그런 존재였다고 한다. 참고로 수학의 3대 천재는 아르키메스와 뉴턴 그리고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설마 만화 가우스전자에도 영감을 준 건 아니겠지)라고 한다.

 

이 두 명의 지식인 슈퍼스타가 1828년 어느 학회 모임에서 만난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들의 신분만큼이나 가우스와 훔볼트는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렸다. 전자는 오만한 천재의 전형을 보여 주면서 자신의 학문적 근거지였던 괴팅겐을 떠나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수를 가지고 놀면서 세계의 본질을 추구했다. 반면, 부유한 귀족 집안 출신의 훔볼트 남작은 자신이 직접 본 것만 신봉하는 독일식 경험주의의 화신과도 존재였다. 그런 점에서 훔볼트는 당대 세계인의 전형과도 같았던 인물이 아니었나 추정해 본다.

 

수학자로 출발해서 천문학자 그리고 토지 측량업자로 변신을 거듭한 가우스는 돈이 필요했다. 계속해서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도 청년 학자는 돈이 필요했다. 대개의 서생들과는 달리 자신의 후원자를 압박해서 두 개의 교수직을 유지하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하고, 토지 측량 사업을 실시하면서 이재에 힘쓰기도 한다. 가우스 같은 천재에게 세상은 너무 쉽게 보였던 게 아닐까. 물론 그런 천재 수학자에게도 자식 농사는 쉽지 않은 임무였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수학이나 천문학에서 그의 실력이 어떨지 몰라도, 연애사업에서는 젬병이었던 모양이다. 첫 번째 부인 요하나에게 편지로 청혼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아내와의 첫날밤에도 갑자기 떠오른 공식을 적기 위해 책상으로 달려가는 그런 남자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가우스는 자신의 능력보다 못한 모든 이들을 우습게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아들 오이겐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19세기 초반, 전 유럽을 호령하던 나폴레옹 전쟁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가우스는 아들 오이겐이 베를린에서 비밀집회에 참석했다가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는 것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뿐이다. 당시는 보수적 프로이센 국가가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 물결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세 명 이상만 모여도 탄압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결국 훔볼트 남작의 호의로 오이겐은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구박을 받던 아들은 미국에 건너가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나 뭐라나.

 

원래 가우스와 훔볼트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화자에 의해 기술되는 방식이었는데 너무 가우스에게만 치중해서 리뷰를 쓴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제 균형을 맞출 시간이 되었다. 가우스와 훔볼트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의 본질을 알기 위해 도전했다. 그리고 화자는 그 둘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스타일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철저한 경험주의자였던 훔볼트는 프랑스인 동료 식물학자 에메 봉플랑과 함께 스페인 식민지였던 지금의 라틴아메리카, 당시에는 뉴스페인 혹은 뉴안달루시아로 불리던 신대륙 탐험에 나선다.

 

식인종들이 출몰해서 무시로 공격을 해대는 오리노코 강과 아마존 강 일대를 탐험하고, 열병은 거의 일상에 가까웠고, 고소증으로 환각 증세를 보이면서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진 침보라소 산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남작의 호기심은 자신을 스스로 실험제물로 삼아 전기 뱀장어를 테스트해보기도 하고,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쿠라레 독을 직접 삼키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장장 5년에 걸친 뉴스페인 대탐험을 마치고, 신생국가 미국의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을 만나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연회장을 얼려 버리기도 했다고 하던가.

 

그런데 한 편으로 보면, 가우스는 몰라도 훔볼트의 탐험에서는 제국주의적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훔볼트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자연에 대한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탐험이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건설과 효율적 지배에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말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외국인 학자가 자신의 나라에 와서 지리와 풍습, 문물을 조사한다는 데 환영할 군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훔볼트가 고대하던 인도 원정은 식민지 모국 영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제국주의 라이벌 영국이 신흥국가 프로이센 출신의 학자에게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보석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재 보라고 할 리가 있었을까.

 

소설의 후반, 세계적 명성을 얻은 훔볼트가 러시아 짜르의 허락 아래 떠난 시베리아 원정 당시 지방 관리들이 남작을 곤경을 처하게 만든 상황들이 어디 한 두 번이었나. 위대한 과학자를 접대하기 위해 마련된 연회나 파티 그리고 무도회가 그저 셀럽 초빙을 빙자한 그들만의 사교모임이었을 뿐, 도대체 학문의 자리는 없었다고 한탄하고 불평을 해대던 가우스를 말년의 훔볼트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지 않았던가.

 

중세의 어둠을 몰아내고, 마침내 이성과 진리가 시대정신으로 부각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프로메테우스들에 대한 문학적 접근은 기대이상이었다. 다니엘 켈만은 게르만 스타일의 국뽕이 흘러넘치는 고런 멋진 소설로 100만 명이 넘는 독일 시민들의 지갑을 털었다고 한다. 다니엘 켈만이 요즘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그냥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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