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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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상실한다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실연과는 아마 또 다른 느낌이겠지. 궁금해하던 영국 작가 맥스 포터의 데뷔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읽었다.

 

작년에 부커상 후보작에 선정된 <래니>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실 국내에 소개가 된다면 <래니>가 먼저 소개될 줄 알았는데, 데뷔작부터 나왔다. 그렇다면 <래니>도 곧 출간된다는 말일까. 기대가 된다.

 

작가 맥스 포터는 서점 직원으로 출발해서 편집자 그리고 작가가 된 인생 유전을 그리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편집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글을 써야겠구나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보니 요즘 한창 전작주의에 빠져 있는 작고하신 토니 모리슨 여사도 편집자 출신이라지.

 

항상 그렇지만 서설이 길었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화자의 아내가 죽었다. 남편과 사내 아이 둘을 남겨 두고. 아내가 정확하게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갑자기 쓰러져서 죽었다고 했던가. 사실 그것도 소설에서 중요한 테제는 아니더라. 소설은 어디까지나 남은 이들의 슬픔과 절망 그 사이 어딘가를 가르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 그리고 삼위일체를 이루는 결정적인 요소로 까마귀가 등장한다. 남편이 잠시 현기증으로 쓰러졌을 때 나타난 게 아마 까마귀였지. 실비아 플라스의 전 남편 테드 휴스의 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던데, 나는 시에는 문외한이고(요즘 페소아의 시가집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물론이고 테드 휴스에 대해서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이 지점에서 번역을 맡은 황유원 시인을 칭찬하고 싶다. 연초 데이빗 설로이 방한 때, 번역을 맡아 만남의 자리에도 참석하셨더라. 진행도 유려하게 해주셨다. 시인 출신 번역가라 그런지 왠지 소설보다는 산문시에 가까운 맥스 포터의 소설을 매끈하게(원서를 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번역하는데 한몫 하시지 않았나 싶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게 소설인가 산문시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소설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실과 절망의 시대를 형상화한다. 어떤 경험들은 해보지 않으면 체화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마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 그런 게 아닐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의 죽음이 그러하리라. 예상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급하게 떠난 아내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한 모습을 애써 상상해 본다. 쉽지 않은 임무다.

 

까마귀는 주인공의 상실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순간에 소리 없이 찾아와 극복의 징후가 보이자 곧 떠난다. 자신과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이웃 친지의 방문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진정한 위로가 아니라 이웃이나 친지로서 자신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는 자위를 위한 게 아니었을까. 소중한 사람을 잃은 감정이 어떻게 위로가 된단 말인가. 결국 우리 인간의 본성은 타인을 위하기보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런 선행을 수행하는 게 아닌가.

 

슬픔은 어떤 누군가를 흥미롭게만들어 준다. - 수잔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52)

 

아내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슬픔은 소설의 시작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흡입한다. 누가 죽었다고?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만큼 대중의 관심을 끄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유명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실검 1위에 오르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다만 타자의 죽음만이 그럴 뿐, 자신의 경우는 아마 생각하고 싶지 않으리라. 유년 시절에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맥스 포터는 그런 죽음을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상실감을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균형을 맞춰 가면서 소설을 진행시켜 나간다.

 

맥스 포터의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라는 제목은 슬픔과 절망은 어느 순간에는 그렇게 날개를 달아 훨훨 떠나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은유한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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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15: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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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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