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놀라운 속도로 쿳시 작가의 <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늘 새벽에 다 읽었다. 그만큼 탁탁 치고 나가는 문장의 가독성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 모든 건 이번 주말 달궁 독서 모임을 앞둔 덕분이지 싶다. 바로 이어서 <철의 시대>도 읽기 시작했는데 토요일 전에 <서머타임>까지 읽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나라의 심장부에서>1977년 발표된 쿳시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의 소설을 일관하는 식민주의/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것에 공모한 자들의 양심의 갈등이 <나라의 심장부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화자는 아프리카 초원 농장주의 딸 마그다다. 마그다의 어머니는 농장에서 일할 젊은 일꾼의 생산을 원하는 아버지의 출산 요구에 시달리다 결국 출산 중에 돌아가셨다. , 아버지와 마그다의 갈등이 어떨지 짐작이 가는가. 철저한 부계지설의 신봉자인 아버지가 새 엄마를 들이는 상상을 하고, 그 둘을 죽이는 존속살해의 끔찍한 망상에 젖기도 하는 마그다. 결국 그녀는 다른 사건 때문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마그다가 시달리는 편두통이 어쩌면 문제의 시발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마그다는 농장의 하인 헨드릭과 다를 게 없는 존재다. 헨드릭이 외부에서 농장 일을 도맡아 한다면, 마그다는 안주인으로 가사를 전담한다. 거의 독재자 아버지의 몸종처럼 그렇게 부려진다. 이러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있나.

 

사단은 헨드릭의 아내 클라인(작은) 안나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아버지는 클라인-안나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고,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캔디와 금전으로 클라인-안나를 유혹한다. 그리고 클라인-안나의 남편인 헨드릭을 농장 멀리 일하러 보낸 사이, 마그다의 아버지가 클라인-안나를 범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마그다의 환상, 착각 그리고 망상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결국 아버지의 부정에 분노한 마그다는 리엔필드 엽총으로 아버지를 쏜다.

 

쿳시가 <나라의 심장부에서>에서 설정한 모든 이야기들은 폭력적 방식을 수반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결국 농장의 파멸을 초래한다. 적절한 보수를 마그다에게 받지 못한 헨드릭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받기를 원한다. 그 또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 대에 설립된 위계질서는 그의 부재 때문에 전복되기에 이른다.

 

나는 이 지점에서 백인들의 지배가 존속되던 시절에서, 아프리카인들에게 권력이 이양된 시절의 남아프리카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쿳시는 백인들이 지배하던 시절이 좋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닐 것 같다. 권력이 이전되던 시절의 혼란과 무질서에 작가는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게 아닐까. 동시에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시절의 도래에 대한 두려움도 일견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모름지기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생래적 공포가 있지 않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봉합된 역사 가운데 개인의 구원 이슈가 등장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자신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아버지의 독재를 종식시킨 마그다가 자신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스스로 묻는 장면을 보라. 농장을 존속시키기 위해 갈등하면서 헨드릭의 호의에 의지해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직시한 마그다의 변신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긴 백인들이 그나마 자본을 유지했다면, 약속의 땅으로 상징되는 농장의 상속자가 된 마그다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녀는 아버지의 돈도 그리고 농장을 가꿀 노동도 없기에 자신의 하인이었던 헨드릭의 포로 신세로 전락한다. 어느 날 갑자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순식간에 바뀌는 가치 전도의 순간에 순응할 수 있을까. 마그다는 그렇게 무력한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쿳시 작가가 초기작부터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주제가 <나라의 심장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쿳시는 역자 왕은철 교수가 어디선가 지적한 대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안으로부터 폭로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자신의 공모성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백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붕괴되자, 아노미 상태에 빠진 백인들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자 이제 <철의 시대>를 읽을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