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상실사
청얼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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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26, 민국 30년 그리고 민국 34년이라는 연호가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쇼와니 헤이세이니 하는 연호가 익숙하듯이 중국 사람들에게도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저런 시기는 중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 같은 이방인이라면 좀 이해가 되지 않는군 하고 넘어가겠지만.

 

중국 출신 천재 영화감독 청얼이 자신의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단편집으로 풀어낸 게 바로 <로맨틱 상실사>라고 한다.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으니 영화에 대해 알 길은 없고, 소설을 통해서나마 그의 작품 세계를 가늠해 보련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로맨틱 상실사>에는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민국 2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과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는 구조를 띠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 다이 선생, 그러니까 중화민국 장제스 정부에서 특무조직을 이끌었던 수장 다이리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에 1946년 다이리가 죽었는데, 그가 죽지 않았다면 국공내전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설도 있을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30년대 상하이는 개항장으로 국제도시였다. 동시에 중일전쟁으로 기세등등하던 일본군이 베이징, 난징과 더불어 전략 목표로 삼은 도시기도 했다. 일제의 패망을 일찍이 예상한 인사들은 일본에게 무조건적인 항복과 전범 처벌을 요구한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로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겠지만.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의 파죽지세에 놀라 충칭으로 옮겨 항전을 이어가고 있지 않았던가.

 

정치적 상황이 그랬다면, 민중들의 삶은 어땠을까. 시골 마을에서 올라온 청년들은 오로지 성공을 하겠다는 일념에 범죄조직에 가입해서 그들이 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저지른다.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팔뚝을 자르질 않나, 삽으로 살인도 한다. 그러다 자신도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 에게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물론 영계는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해 보답하지 않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회와 권력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세상에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작가 청얼의 메시지를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편, <인어>도 마찬가지다. 수족관에서 인어 연기를 하는 어느 여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두 남자를 그녀를 돕겠다고 결심하지만 말 뿐이다. 술자리에서의 한담 같다고나 할까.

 

다이리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여배우>도 인상적이었다.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고 있던 시절은 수상했고, 우리가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던 각자도생의 시대였다. 그나마 그 시절에는 풍류와 낭만이 있었고 의리 같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감성이 전설의 중심에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는 얼결에 결혼해 버리고, 바람을 피다가 납치된 남편을 건사하기 위해 암흑계의 거물 두 선생에게 청탁을 넣는다. 그 다음에 이야기가 어떻게 됐더라.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배우의 남편이 그대로 죽었어도, 아니면 정상에서 추락한 여배우가 신산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말이다. 청얼 감독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에 방점을 찍는다. 그땐 그랬지 하고 말이다. 사회주의의 탈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자본주의 물질사회를 이룩해 나가고 있는 현대 중국의 모습은 인간이 원하는 구원의 그것과 너무 괴리가 있지 않은가. 물질적으로도 말이다.

 

장삼봉 선생이 장무기에게 태극권을 전수해 줄 때처럼, <로맨틱 상실사>를 읽을수록 이전의 이야기들을 기억할 수가 없더라. 현재 진행되는 내러티브에 너무 몰입해서? 아니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스토리에 그만 길을 잃어서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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