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
카를로 레비 지음, 박희원 옮김 / 북인더갭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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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돈 카를로 레비의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를 읽으면서 꼽은 세 개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빈곤, 말라리아 그리고 이교도. 마지막은 주술로 등치해도 무방하리라. 지난 5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한 백 쪽 남짓 읽고 나서 잠시 접어 뒀다. 그리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198, 그러니까 돈 카를로가 84년 전에 이탈리아 루카니아 지방의 갈리아노로 유배당한 계절에 책을 다 읽었다. 참고로 오늘 폭염 주의보가 발령됐다.

 

토리노 의대 출신의 지식인이자 마지막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를 만한 경력의 소유자 돈 카를로는 당시 이탈리아 국가를 지배하던 파시즘에 저항했다. 그것은 나중에 그가 저술하듯이 갈리아노 지방의 산적들(농부들의 변신)의 그것처럼 일견 무모한 항거가 아니었을까. 돈 카를로를 찾은 그의 누이 루이자가 마테라에서 보고 느낀 것처럼 갈리아노를 비롯한 남부의 시골은 그야말로 천형의 땅이었다.

 

사회적 소외를 상징하는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고, 돈 카를로가 지적한 대로 순박한 농부들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한 중간 계급의 착취는 중세 이래 농부들을 빈곤의 사슬에 얽어매온 것이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조금도 관심이 없는 중앙의 로마정부는 오로지 그들의 세금을 뜯어낼 궁리만 할 따름이다. 염소에도 세금을 매기지만, 무너진 다리 보수에는 지원할 자금이 없다. 아니 농촌을 개선시키려는 의지에 불탄 유배된 의사가 말라리아 근절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면 돈 루이지 시장을 필두로 한 권력자들은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되묻는다.

 

농부들이 귀족으로 치부하는 의사 선생 돈 카를로는 이교도 농부들의 주술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파시스트들의 유일한 관심은 돈 카를로가 얌전하게 3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길 기다릴 따름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돈 카를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갈리아노와 인근 농부들을 치료하는 진료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10개월간의 갈리아노 유배생활은 이탈리아 문학에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라는 축복을 안겨준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을 찬양할 생각은 정말 1도 없다.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는 종교 서적이 아니다. 제목만 보고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내가 보기에 무신론자인 돈 카를로의 유배 기록이다. 갈리아노 마을에서 다양한 체험을 한 돈 카를로는 말미에서 고향 토리노를 방문해 지인들에게 남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갖가지 봉건적 질서로 농부들을 억압하는 중간 계급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자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지방 분권과 자치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어쩌면 토스카나 같은 북부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다. 남부 사람들을 부르봉 잔재에 물들었다고 보는 아직까지도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북부인들의 입장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다.

 

1930년대 갈리아노를 비롯한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메리카는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가정에서 주로 남자들이 신대륙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났다. 하지만 신대륙에서 돈을 벌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류 계급에 편입된 사람들을 적었다. 그리고 1929년 대공황으로 다시 돌아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기존의 농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주 계급이 토지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 권력을 행사했다면 그들과 더불어 이탈리아 남부의 정신세계를 거머쥔 가톨릭 사제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았다. 크리스마스 미사에서 대취해서 횡설수설한 채로 미사를 집전한 돈 트라옐라 사제를 대신해서 부임한 돈 피에트로 리구아리가 보여준 고행이라는 미명의 탐욕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마의 관리들은 남부 사람들의 생활 개선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지만, 토리노 출신 돈 카를로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인 모양이다. 마을에서 신망을 잃은 기존의 두 명 의사를 대신해서 유배객이 진료를 한다는 소식에 당장 금지령을 내린 것을 보면 말이다. 보신의 달인 돈 루이지 시장은 도통 인명을 구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장 자리 지키기에만 몰두한다. 맹장이 파열되어 죽어가는 마을 사람을 보며 돈 카를로가 느낀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전율할 정도였다. 침묵과 체념으로 자신들의 숙명을 받아들인 일단의 농부들이 어느 순간 각성해서 그 옛날 전설처럼 전승되어져온 민중 봉기라도 할 기세로 일어서는 모습에서는 한 줄기 희망을 엿볼 수도 있었다.

 

1935103,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부가 시작한 아비시니아 전쟁은 또 어떤가. 자기네 나라 시민들의 고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고대 로마 제국의 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아프리카 대륙의 유이한 독립국가 에티오피아를 이탈리아는 침공했다. 농부들의 엉터리 조국은 이번에도 전쟁을 위해 젊은 농부들의 피와 전비 마련을 위해 시골 아낙네들의 금반지를 털라고 강요한다. 도대체 그런 전쟁이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데 무슨 기여를 한다고 그들에게 지속적인 희생을 요구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갈리아노의 농부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들의 소박한 바람은 그저 돈 카를로가 그들이 지닌 육신의 병과 영혼을 치유해 주는 것이었다.

 

돈 카를로 레비의 유배 생활은 저자의 낙천적인 성품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아마 도시인으로서는 평생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추체험을 훌륭한 기록으로 남겼다. 암퇘지 거세 전문가로 나선 베르킨게토릭스를 닮은 붉은 수염의 돼지 의사 에피소드는 돈 카를로의 기록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한편 미혼의 돈 카를로에게는 시중과 음식을 만들어준 가사 도우미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선발된 줄리아는 마녀였노라고 저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알려준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의사라는 과학의 선봉장이 마녀 타령을 하고 아브라다카브라같은 주술의 힘을 공공연하게 떠드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갈리아노 같은 마을에서 모든 상징은 실재가 되었고, 돈 카를로는 기적을 일으키는 주술사 취급을 받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과연 우리가 신봉하는 과학과 천시하는 주술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갈리아노의 농부들에게 그 둘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다산선생이 유배지 강진에서 수많은 저작들을 남겼듯이, 우리의 돈 카를로 선생도 유배지 갈리아노에서의 생활을 통해 진짜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라는 걸작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 걸 보면 고난이 지식인들에게 창작을 위한 하나의 자극제 아니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 카를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약속을 했지만, 결국 하나도 지키지 못했고 사후에 비로소 갈리아노로 돌아왔다지 아마.

 

지난 세기의 마지막 르네상스인은 유배지 갈리아노에서 그곳 사람들의 삶에 진중하게 천착해서 놀라운 문학적 성과를 빚어냈다. 그리고 그 성과가 우리에게 도착하는데 자그마치 74년이나 걸렸다. 아니 누구 말대로 이제라도 도착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기해년 나의 책읽기를 기념할 책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은 돈 트라옐라 신부의 설교 말씀으로 대신하고 싶다.

 

팍스 인 테라 / Pax in terra / 땅 위에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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