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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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망주 작가 중의 하나라는 말은 들었지만 제스민 워드의 실력은 이번에 출간된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로 알게 됐다.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정면에 내세운 책이다. 그렇다면 결국 세그리게이션이야말로 해결책이라는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겠지. 제스민 워드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환상으로 격상시킨다. 그래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처럼.

 

소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는 세 명의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13세 소년 조조와 그의 어머니 레오니 그리고 조조와 비슷한 나이의 유령소년 리치. 조조와 그의 여동생 케일라(미카엘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각각 아빠와 엄마라고 부른다. 암에 걸려 병상에서 죽어가는 엄마는 레오니의 모성 없음을 손자에게 경고한다.

 

조조와 케일라의 아버지 마이클은 백인이고, 지금은 악명 높은 파치먼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마이클의 아버지이자 조조와 케일라의 할아버지 빅 조지프는 흑인 손자 손녀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미시시피라는 동네에 사는 백인들의 특징일까. 5년형을 받고 수감 중인 마이클이 38개월의 형을 살고 조기 석방된다는 소식에 아이들과 직장 동료 미스티와 함께 로드트립에 나선다. 조금 클리셰이가 아니냐고?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사실을 빅 조지프에게 알리러 갔다가 라이플을 들고 있는 모습에 레오니는 질겁하고 도주한다. 레오니는 그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필로폰 상습복용자에 이번에도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약배달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 레오니 집안에는 죽은 사람을 보는 환시 능력이 유전되는 모양이다. 그녀는 억울하게 죽은 오빠 기븐을 그리고 조조는 아빠 리버와 함께 지내던 리치를 각각 보게 된다. 현실과 환시를 넘나드는 제스민 워드의 서술 속에서 뿌리 깊은 미국 남부의 인종주의의 면모들을 넘실거린다. 그리고 환상을 가미한 저자의 문장들은 매혹을 뛰어넘어 강렬한 아우라를 발한다. 군데군데 메모를 하고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막상 인용하려니 귀찮다.

 

오래 전 리버와 리치가 수감되었던 그리고 백인 아빠 마이클에게는 현재진행형인 파치먼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다. 죄를 지었으면 교정시설에 들어가 죄의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다. 다만, 리버와 리치가 무슨 죄로 그런 가혹한 형을 살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이클의 죄는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내가 소설에서 꼽은 두 가지 결정적인 장면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파치먼에서 나온 마이클이 운전을 하다가 도로에서 경찰에게 수색을 당하게 되는 장면이다. 운전면허도 없는 마이클이 운전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다량의 필로폰을 가지고 있는 게 더 문제다. 지금 막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이 마약소지죄로 경찰에게 잡힌다면 어떻게 될까. 두 명의 백인, 한 명의 흑인여성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기묘한 조합에 경찰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걸까. 다급한 마음에 필로폰을 삼킨 레오니의 위기는 아직 아이지만 어른 같은 모습의 조조는 경찰에게 당하게 되는 수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빠가 준 부적을 주머니에서 꺼내려다가 경찰에게 오해를 사는 바람에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겟 아웃>에서 흑인 남자 주인공이 백인 경찰의 심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장면이 순간 떠올랐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현실이라고 제스민 워드는 소설로 증명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마이클과 레오니를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다음 컷은 빅 조지프를 찾아간 마이클 가족의 수난이다. 레오니는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마이클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들이 환대를 받았을까? 천만에 말씀. 그나마 마이클의 어머니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먹이자는 의견이지만 빅 조지프는 마이클과 난투극을 벌인다. 자신이 가진 인종주의에 대한 의식을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이들의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제스민 워드는 그렇게 미국 사회에 내재된 갈등이 이런 식으로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는 점을 바로 이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에게 확실하게 전달한다. 언제든 도화선에 불만 당기면 그 다음은 잘 알 것이다.

 

후반에 저자가 치밀하게 준비한 리치의 죽음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개의 결정적 장면에 비하면 좀 약하지 않나 싶다. 너무 센 주사를 연달아 맞으니 서사의 힘이 좀 빠졌다고나 할까. 이어지는 서사 부분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러티브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하늘이 복숭앗빛으로 물들어도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를 다 읽고 나서, 어쩌면 미국 인종주의 소설은 흑인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닌가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인 작가가 쓴다면, 흑인 작가의 그것만 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논쟁의 씨앗이 될 지도 모르겠다. 흑인 작가는 “N” 단어도 마음껏 쓸 수 있지만 백인 작가는 그럴 수 없다는 말을 우리 브렌던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지 아마. 어쨌든 제스민 워드 작가는 미국 사회가 품고 있는 인종주의 문제의 기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면서도 동시에 환시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해석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만족하는 중립적인 글을 짓기란 역시 쉽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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