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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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이렇게 류시화 작가의 책을 꾸준하게 읽다간 그의 팬이 되어 버리겠는걸.

 

그동안 읽은 아마 우화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번에는 인도 여행기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바라나시 만원 여행을 진행한 유투버의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화에도 나왔다는 뭄바이의 세계 최대의 슬럼가 구경도 했었지. 나에게 인도라는 여행지는 신비에 쌓인 곳인 동시에, 가난과 더러움 그리고 박시시를 외치는 걸인들의 천국으로만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류시화 작가의 <지구별 여행자>를 읽으면서 그런 편견들이 수정되기 시작했다.

 

우린 여행에서 무얼 찾고 싶어 하나. 가장 기본적인 건 아마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다. 매일매일이 나의 일상과 같다면 뭘 하러 비용과 시간을 들여 여행에 나서겠는가. 그리고 여행에서는 될 수 있다면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겠지. 그런 이들에게 인도는 전혀 해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아주 자주 인도를 찾는 모양이다. 그 여행길에서 만난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사두들과의 대화는 좋은 글감이 될 것이다.

 

일찍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여러 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작가는 노트에 볼펜으로 기록을 했단다. 그런데 어느 사두가 그렇게 글로 적은 글 말고, 가슴에 새긴 글을 쓰라는 말에 저자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나의 가슴에 새겨지지 않은 글들이 타인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아닐 것이다. 문학에서 기발한 착상을 보고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다만, 누군가는 나보다 앞서 그런 생각을 글로 옮겼을 것이도 또 누구는 그러지 못함의 차이가 아닐까. 최근 발표된 박상영 소설가의 소설 줄거리를 보고 바로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두를 빙자해서 어떻게든 외국인 여행자의 돈을 뜯으려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정말 선의로 나그네를 도우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보면, 그 모두에 신의 섭리가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구글맵의 도움으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지난 세기에 여행을 떠났을 적만 하더라도 그런 건 기대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쑥스러워 하는 나그네는 타인에게 길을 묻는 대신(언어 탓도 있었다) 홀로 길을 찾겠다고 하다가 무진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신이 모두 예비하신 거란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지름길로 인도해 준다는 거지. 무려 35백만이나 되는 힌두 신들이 보우하사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정되어 있는 만남을 가지고, 길을 헤매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사두들을 만나 신박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어때 듣기만 해도 당장 비행기표를 사서 인도로 달려 가고 싶지 않은가.

 

류시화 작가의 글에는 무위의 무언가가 잔뜩 내포되어 있는 느낌이다. 인도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라. 그저 바람 가는 대로, 그리고 발걸음이 인도하는 대로 인도를 여행하라. 또한 다른 사람을 찾고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대신 짧은 인생에 반추해 보고 충실하라. 그게 바로 <지구별 여행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그러다 보면 숱한 에피소드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여배우와 동행한 인도발 네팔행의 인도자 바부 이야기는 가히 최고였다. 익스트림 여행을 원하는 나그네라면 인도에서 차를 몰아보라고 작가는 말한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도중에 심한 감기에 걸려 코냑 메디신 처방을 받은 바부는 그만 자신의 차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죽음 타령을 하던 여배우는 이제 인도에 완전 적응이 되어 이미 꿈나라에 든지 오래다. 그렇다면 운전은 누가 한담? 긴머리 핑크 바지 저자가 과감하게 운전대를 잡는다. 읽는 이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독서의 여정이었지만 실제 저런 일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나의 나폴리 노숙과는 차원이 다른.

 

어쨌든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 나서 인도 여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건 사실이다. 나라면 유투브에서 본 것처럼 빈대가 들끓고, 어떻게 해서든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그들의 상혼에 어떻게 맞설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처럼 너른 마음으로 인도을 감싸안고, 매순간을 즐기며 생을 춤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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