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어느 신문에 실린 통일보다 경제가 우선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어느새 밤이 되어 버렸네 그래.
그 칼럼니스트의 말대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줄창 불러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왜 통일이 소원인 지도 모르고 그냥 그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어릴 적 뇌리에 새겨진 멜로디는 여전한 파워를 자랑한다. 지금도 얼핏 가사가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두 번의 보수정권 시절을 지내면서 공동체 의식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약자인 아파트 경비하시는 분들을 두들겨 패고, 서로 상충하는 이해를 대화보다 물리력을 동원해서 해결하려는 그런 움직임들이 각자도생의 시대가 초래한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는 생각들, 언론을 장식하는 각종 대형 범죄들도 돈으로 무마할 수 있다는 의식이 은연 중에 만연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통일 이야기로 돌아가서, 칼럼니스트는 독일의 예를 들면서 서독의 경제가 동독의 그것을 압도하면서 결국 통일에 이르게 되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를 맹신하는 스타일의 논리를 전개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시각이 외눈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독일 통일의 요건이 오로지 서독의 압도적인 경제력 뿐이었을까? 서독의 우세한 경제력은 통일의 한 요소일 따름이었다. 우선 서독은 1945년 패전 이후,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과거사 청산을 이뤄냈다. 우선 국가운영을 맡은 고위 공직에서 나치 전범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히틀러의 혹독한 국가사회주의 독재를 경험한 국민들은 다시는 극우 세력이 발붙일 수 없도록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재정비된 독일식 민주주의는 지금까지도 민의를 대변하는 시스템으로 많은 나라들의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동방정책의 선구자 빌리 브란트 총리가 이끄는 서독은 동독 주민들과의 교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독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동독의 공산주의를 압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점들이 45년 분단의 딛고 마침내 통일을 이룩해낸 원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36년 일제 지배의 잔재를 청산했던가. 패전국이 아님에도 우린 독일과 같은 과거사 청산을 이루지 못했다. 헌법기관이었던 반민특위의 실패가 단적인 예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두 번의 걸친 군사 쿠데타로 혹독한 독재를 경험했다. 독재자들은 당연히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자신이 없었고, 북한 주민과 교류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북한과의 적대적 공존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은 수구 기득권 세력은 분단의 고착화에 매달렸다. 그 결과 분단 74주년을 맞는 올해도 우리에게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기술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최고의 제조강국이라는 독일도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는데 어마어마한 재원과 한 세대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소소한 공동체 의식마저 사라져 가는 마당에, 수십 년 떨어져 살아온 같은 민족에 대한 감정이 어느 날 느닷없이 다가온 난민에 대한 거부감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뱀다리] 비슷한 시기에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카더라 뉴스를 기명 칼럼으로 쓴 소설가 뺨치는 칼럼니스트의 패기에도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냥 지인들과의 술자리에나 어울리는 게 아닌가. 깜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공공 대중이 읽는 기명 칼럼으로 발표하다니, 정말 놀랍다. 자신이 아는 부장판사가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데, 그보다 훨씬 더 윗급의 전직 대법원장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걸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다. 2019년 쉬르리얼리스틱한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