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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ㅣ Medusa Collection 3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주제인데다 서스펜스적인 요소가지 겸비해서 읽는 데 제격이었다.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에 이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문제작 <로즈메리의 아기>를 발표한 아이라 레빈은 히틀러의 충실한 후계자 요세프 멩겔레가 제4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놀라운 계획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대안역사를 가정에서 놀라운 소설을 시작한다.
1974년 가을, 브라질의 상파울루 일식집에 백색 양복을 입은 노신사와 함께 6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집결한다. 이른바 나치 친위대 잔당들의 비밀조직인 “카메라덴베르크”의 요원들이었다. 백색 양복의 리더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악명을 날린 친위대 장교 요세프 멩겔레였다. 실제 역사에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의 끈질긴 추격으로 브라질의 밀림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멩겔레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멩겔레 박사는 6명의 전직 친위대 요원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린다. 미국와 캐나다를 비롯해서 영국, 서독,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9개국에 산재한 94명의 공무원이나 그에 준하는 직책에서 은퇴한 65세 가량의 남성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일절의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비밀조직의 명령이란 그런 게 아닌가. 요세프 멩겔레는 오로지 아리안족의 영광과 죽은 총통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만 간략하게 덧붙인다. 사명을 받은 킬러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이들의 회동에 대한 기록이 비밀리에 소형 녹음기에 녹음된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출신 유대계 청년인 배리 쾰러가 저명한 나치 사냥꾼 야코프 리베르만(시몬 비젠탈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는 순간, 나치 킬러들이 등장해서 청년을 죽이고 은폐를 시도한다.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야코프 리베르만이 그렇게 등장한다. 나치의 음모를 캐려는 청년 쾰러의 시도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쾰러가 전달해준 메시지를 추적하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카메라덴베르크의 충실한 킬러들은 멩겔레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10월 16일부터 다음해 4월 23일까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한다. 나치의 살인기계들은 그야말로 톱니바퀴 돌아가듯 그렇게 성실하게 암살 임무를 수행한다.
리베르만은 연쇄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고를 추적하던 중, 희생자들이 모두 13~4살 정도의 남자 아이들을 불법적으로 입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놀랍게도 서로 닮았다는 점도.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멩겔레가 수용소에 억류된 유대인들에게 시도하던 실험이 쌍둥이와 우생학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른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그는 마침내 멩겔레가 인간 복제, 다시 말해 당시만 하더라도 충격적인 클로닝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복제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걸 누설하면 안되기에 그 부분은 패스하도록 하자.
역시 나치 전범이었다가 사실이 드러나 독일로 송환된 프리다 말로니를 통해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입양아를 불법적으로 공급했다는 점도 소설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다. 리베르만의 끈질긴 추격으로 카메라덴베르크 작전이 실패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자이베르트 대령을 필두로 한 지휘 그룹은 작전 취소를 명령하고 요원들을 소환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멩겔레는 자신이 직접 나치 사냥꾼 리베르만을 제거하고, 남은 암살 명단에 오른 인원들을 처치하겠다며 변장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 아이라 레빈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은 대안역사를 창조해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많은 나치의 잔당들이 독일 국내에 숨어서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연루된 책임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연합군의 의중을 파악한 이들은, 오데사 프로젝트 아래 조국 독일을 떠나 남미에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았다. 가장 유명한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은 모사드와 협력해서 아이히만과 슈탕글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끈질길 노력에도 불구하고 멩겔레와 그의 하수인이었던 알로이스 브루너 같은 이들은 끝내 역사의 재판정에 세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치 잔당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어서 제 4제국을 만들겠다는 허황된 계획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제 3제국과 히틀러의 부상도 처음에는 절대 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라 레빈 소설의 핵심은 독자로 하여금 히틀러와 나치들이 부상하게 된 세계적 위기 상황의 재연과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는 대중 심리에 대한 하나의 경고장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져 있지 않은가. 이런 수상한 시절이야말로 히틀러 같은 엉터리 지도자들이 득세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나치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193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사회의 그 어느 누구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정당이 독일 국가의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2018년에 보면 좀 억지스러워 보이는 나치 음모설에 입각한 클로닝도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발표된 42년 전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이 발표되고 2년 뒤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그레고리 펙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 시리즈의 말썽쟁이 마호니가 미국 청년 배리 쾰러 역을 맡은 트레일러를 유투브를 통해 봤는데, 상당히 소설에 부합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고전영화로도 만나 보고 싶다. 다시 영화화가 된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아직 현실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