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읽은 <바느질 수다>를 읽고 나서 존재를 알게 된 <자두치킨>을 읽었다. 아마 영화로도 나와 있다고 하던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는 1958년 11월. 이란의 전통 악기 타르 연주자 나세르 알리 칸이 죽었다. 그는 왜 죽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사트라피가 그린 <그래픽 노블>의 주제다. 문제의 발단은 무엇이었나부터 짚어 보자. 나세르 알리의 아내 나히드의 어떤 행동 때문이었다. 아티스트 나세르 알리가 애지중지하는 스승이 물려준 귀중한 타르를 박살낸 것이다. 그로부터 나세르 알리는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 저승사자 아즈라엘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래픽 노블의 처음은 나세르 알리가 평생 사랑 이란느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이란느를 나세르 알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 그녀는 모르는 척 했다. 동생에 비해 어려서부터 말썽쟁이였던 나세르 알리. 그런데 범생이 동생 아브디의 삶은 어떠했던가. 공산주의 운동을 한답시고 가족들의 속을 태우지 않았나 말이다. 1953년 미국 CIA의 빛나는 공작으로 석유국유화를 단행한 민족주의자 모사데크의 실각에 대해서도 사트라피는 다룬다. 한 때 아랍세계에서 자랑 자유로웠던 이란, 페르시아가 지금은 원리주의자들의 지배를 받는 신정국가가 되지 않았던가. 세상 일은 그렇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자발적 죽음을 앞둔 나세르 알리는 가족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15년 전, 어머니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던 나세르 알리를 자신의 목숨에서 몇 년 띠어 어머니에게 주어도 무방하다고 할 정도로 간절하게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아들 나세르 알리를 불러 이제 그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들의 기도가 어머니가 이승에서 떠나는 걸 막고 있다고 말하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원 없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말에 나세르 알리는 당장 서른 갑의 담배를 대령한다.

 

자신과 가장 닮지 않은 수다쟁이 아들의 기도 때문에 나세르 알리는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을 수도 없다. 아티스트의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장사를 하겠다는 아들은 이란 혁명이 터지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나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모자파르의 아이들이 모두 비만인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가장 말썽쟁이 아들이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도 놀랍다.

 

영화 자두치킨으로 검색해 보니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영화가 검색창에 떴다. 마르잔 사트라피가 직접 연출한 영화라고 하는데, 이란의 전통악기 타르를 바이올린으로 대체되었고 배우들은 불어로 대사를 치는 것 같다. 짧은 영화 트레일러를 보니 예술은 삶을 이해하게 만들어 주고, 예술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아마 영화에서는 나히드의 예술적인 바가지 액션 그리고 환상적인 이란느와의 사랑이 그야말로 대조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저승사자 아즈라엘도 한몫 하는 것 같던데 궁금하다.

 

아, 참고로 자두치킨은 나세르 알리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요리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실의에 빠진 나세르 알리를 유혹하려고 아내 나히드가 만들어서 유혹했지만, 나세르 알리는 음식을 그만 뱉어 버렸다.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저승사자의 방문을 의미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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