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 잘했어요 - 거짓일지라도 나에게는 꼭 필요했던 말
박광수 지음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그냥 궁금했다. 이십여 년 전, C일보엔가 연재하던 <광수생각>을 즐겨 봐서 그랬던가. 당시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친구가 <광수생각>의 광수와 실제 광수와 차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연재읽기를 접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사랑타령은 이혼으로 빛이 바랬고, 불우이웃 돕기 역시나 자기만족적이라는 비판 때문이었을까. 환호가 냉담으로 바뀌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광수생각>의 광수는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는 힐링과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는 문구가, 특히나 인스타그램에는 넘쳐흐르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에 상처를 그렇게 입고 살아가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생살이가 녹록하지 않다는 건,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란다. 그것도 사회생활 초년기에나 가능한 일이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부양할 가족이 생기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선택지가 된다. 어제 읽은 줄리언 반스의 책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몰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놈의 돈 벌다 세월이 갈 판이다.
반세기를 살아오며 이런 저런 세상풍파를 체험한 광수 씨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졌을 때, 그에게 야구가 탈출구였던 것처럼 마음껏 자신을 소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야구가 스포츠 중에서 제법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는 건 알고 있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고 해도 돈이 필요한 법이라는 것이다. 아이 또 돈 타령이네...
야구하면 나도 한 타령할 수 있는데. 예전에 엠엘비의 보스톤 레드삭스를 열렬하게 응원했었다. 물론 지금도 팬이다. 2004년 우승의 저주를 풀기 전까지 얼마나 혹독한 시련들이 있었던가. 바로 전해인 2003 ALCS 7차전에서 영원한 숙적 양키즈의 애런 분에게 통한의 끝내기 홈런을 맞고 역전패당하던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2018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오클랜드를 꺾은 양키즈와 다시 ALDS에서 숙명의 라이벌전을 치르게 된다고 한다. 부디 초전에 박살내 주길! 웃기는 건, 예전에 돈키스라며 돈으로 우승을 산다던 보스톤이 엠엘비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팀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블 엠파이어(evile empire)란 별명은 이제 양키스보다 레드삭스에게 더 어울리는 별명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 보면, 상황이 역전되는 법이긴 하지.
자존감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에세이집에서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에피소드는 바로 파타야 코끼리 투어가 아니었을까. 까만 마음으로 푸켓 대신, 여성들이 득시글거릴 것으로 추정되는 파타야로 갔다가 졸지에 아이들 보모 신세로 전락하고 코끼리 트래킹에서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친구와 함께 코끼리들을 힘들게 했던 전과자들의 이야기에서 정말 빵빵 터져 버렸다. 그들을 태우기 위해 맘모스급 코끼리들이 등장하고, 가뿐하게 일어나는 동시에 엉덩이에서 볼링공만한 끙아들이 나왔다는 이야기, 흥겨운 스토리가 아닐 수 없었다.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별점 이야기도 흥미롭다. 요즘 어디서고, 가성비가 최고라는 맛집투어를 하고 올라오는 사진들이 인기다. 왠지 그런 곳의 사진을 보거나, 텔레비전 방송 혹은 입소문을 들으면 가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곳들을 찾아가 보면 대부분 실망하기 마련이다. 한 마디로 말해 초심을 잃게 된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아무래도 줄서기와 불친절한 서비스는 기본이다. 내 돈 주고 가서 그런 곳에 가서 대접을 받는다니, 믿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나는 그런 곳은 가지 않으련다. 예전에 추운 가을바람을 맞아 가며 군산 짬뽕맛을 보겠다며 기다린 나의 어리석음을 통탄할 따름이다.
광수 씨와 더불어 세월을 헤쳐 오다 보니, 그 옛날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그런 기분은 들지 않더라. 한 컷의 만화로도 오랜 여운이 가는 그런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이젠 세월과 함께 다 휘발되어 버린 그런 느낌이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얼 하면서 사는지 몰랐었는데 여전히 그림 그리고 책내고 그리고 강연회도 다니는가 보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아,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제발 2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느니 하는 광고는 자제해 주시길. 사골도 고만 우려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