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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챈스의 외출
저지 코진스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9월
평점 :

미국 문단의 이단아 저지 코진스키의 <정원사 챈스의 외출>이 발표된 해는 1970년이다. 미국적 질서로 세계가 좌지우지되던 시절이 저물고 있던 그런 시절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인공 챈스/촌시 가디너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린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에 나오는 검프처럼, 촌시 가디너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타의에 떠밀려 정상에 오르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와 말들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다시 한 번 침묵이 금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어르신(Old Man)의 휘하에서 수십 년 동안 정원을 가꾼 챈스(chance)에게 우환이 닥친다. 바로 어르신이 돌아가신 것이다. 고아이고 지능마저 부족한 챈스에게 어르신의 정원이야말로 세상의 풍파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방파제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문제는 어르신이 챈스에게 어떤 ‘기회’도 부여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챈스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고, 오로지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상의 정보들과 만날 뿐이다. 어르신의 돌아가신 뒤, 등장한 변호사는 그에게 고용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거명령을 내린다.
정말 백지 같은 과거를 지닌 챈스는 어르신의 가방에 어르신 옷가지 몇 개를 챙겨 갈 곳도 없는 상태로 길을 나선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항상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미소를 짓는 법, 미국제일금융의 이사장 부인 엘리자베스 이브(이하 EE로 표기) 랜드가 탄 차에 교통사고를 내면서 우리의 늠름한 주인공 챈스-EE에 의해 촌시 가디너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는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낼 수 없는 과거의 소유자 촌시 가드너는 EE의 남편으로 죽어가고 있는 벤저민 랜드에게 그 능력(무슨 능력?) 인정을 받아 미합중국의 대통령과 대면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상황에 대한 자문을 해주게 된다. 아니 글도 모르는 문외한 촌시 가디너가 무슨 경제문제에 대한 심오한 해결책을 제시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 더 이상 겸양이 아닌 시절에, 자신이 가꾸어온 정원의 식물에 대한 비유로 그야말로 한 방 세게 터뜨리면서 촌시 가디너는 일약 미국제일금융 이사장과 대통령의 경제고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EE마저 촌시를 사랑하게 되면서, 촌시는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성공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촌시 가디너라는 미지에 인물에 대해 매스컴에서는 한껏 뻥튀기를 하고, EE의 도움으로 각종 파티에 출입하면서 촌시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한다. 당시 미국과 대결구도에 있던 소련 대사 스크라피노프에게 러시아 어까지 할 수 있는 지적인 인물로 인정받고, 프랑스와 독일 대사에게도 호감을 얻고 텔레비전 방송에까지 출연하면서 단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 버린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왠지 모르게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그리고 영화 <광해>가 떠올랐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촌시에게 육탄공세를 퍼붓는 장면과 미국 대통령과 소련 대사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도 촌시 가디너의 과거를 파헤칠 수 없게 되자, 스크라피노프 대사 “누구한테 약을 팔아”라며 외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폴란드 출신 저자 저지 코진스키식 블랙유머라고 해야 할까. 글도 모르는 촌시에게 출판업자가 달라 붙어서 책을 한 번 써보자는 제안도 또 어떤가. 미국식 성공방정식의 판박이 같은 재현이라고 해야 할까.
어리석은 독자는 소설의 후반에서 급부상한 촌시 가디너의 추락을 예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내러티브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저지 코진스키는 그런 방식을 배척한 모양이다. 촌시의 의도하지 않은 신비주의로 무장한 침묵은 그를 부통령 노미네이션까지 밀어 붙인다. 후속작이 있다면 어떤 스타일로 전개가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포레스트 검프의 성공이 미국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에 대한 유쾌한 풍자였다면, <정원사 챈스의 외출>은 그야말로 원제가 그려내듯이 <Being There>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촌시 가디너가 모든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도 역시나 저자가 의도한 고도의 풍자가 아니었을까. 촌시 가드너의 행동 준거의 근거는 모두 텔레비전에 방송된 것에서 유래한다. 그런 점에서 촌시가 아주 지능이 떨어지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단지 반응이 느린 탓인가? 모든 일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촌시 스타일로 진행하는 게 삶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발표된 지가 48년이나 돼서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흥미로운 독서였다. 피터 셀러스 주연으로 1979년 원제 <Being There>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해서 유튜브로 영화 트레일러를 찾아 봤는데, 역시나 무표정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 촌시 가디너의 모습이 제대로 그려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화는 구할 수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