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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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누군가 죽은 시신의 머리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간다. 그리고 1986년과 2016년이라는 30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주인공 에디 애덤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포커를 쳐본 적이 있으신지. 자신이 손에 쥔 카드를 보면서 다른 이들은 도대체 무슨 카드를 쥐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판돈이 크면 클수록 고뇌는 깊어진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책에서 고뇌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잃어 버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소설 <초크맨>에서 주인공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마지막 패까지 떠야 결판이 나는 게임이다.

 

올해 42세 에디 애덤스는 자신이 열두살이던 1986년부터 숱한 죽음을 목격해 왔다.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 메탈 미키의 형 션 쿠퍼의 익사, 댄싱 걸 일라이저 렌델의 참혹한 죽음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조금씩 이승을 떠나는 장면들을 목격했다. 한 마디로 말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거다. 소설 <초크맨>은 성장 소설의 테를 두르고 있지만 또 한커풀 벗겨 보면, 인간은 누구나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주제의식을 은연 중에 전파하고 있다. 그 중에 중심은 바로 에디다. 동시에 결코 예단하지 말라는 주문을 스스로 외우며 지낸다.

 

그런데 난 왜 자꾸만 보지도 읽지도 않은 스티븐 킹의 <그것>이 연상되는 걸까. 스티븐 킹은 넉살 좋게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신예작가 C.J. 튜더의 작품도 좋아할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 살인사건, 이제 성년이 된 소년들이 시간을 오가며 들려 주는 과거사에 얽힌 비밀들을 풀어 나가는 방식 등등. 재밌긴 한데 <그것>과 유사한 구조로 전개되는 내러티브가 영 찜찜하기만 하다.

 

아마 작가도 그런 점을 예비해 두어서인지, 에디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다양한 썰들을 부비트랩처럼 준비해 두었다. 그러니까 작가의 실력이 발휘되는 점은 바로 인간 관계다. 어느 누구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면 안된다. 소설에 아무런 의미 없이 등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다만 페이크 모션도 조심해야 한다.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한 것들이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야말로 뻥카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 다시 포커 생각이 난다. 혹시 작가가 친구들과 둘러 앉아 맥주와 감자칩을 즐기면서 포커 게임을 하는 낙에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는데 포커 만한 게 또 없지. 지나치게 승부욕에 불타서 지가 이겨야 성이 차는 선수들만 없다면 말이다.

 

에디가 사는 앤더베리는 참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나 있는지 서로 다 안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밀이 없어 보이는 동네다. 하지만, 진짜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 <초크맨>은 바로 그 비밀의 카드를 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 밝히는 그런 작품이다. 누가 “왜” 그랬는가에 대한 질문이야말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독자는 흔히 범하는 예단의 함정에 빠져 누가 범인일까에만 관심을 둔다. 바로 나처럼. 그런데 정작 소설의 초점은 누구보다 왜에 맞춰져 있다.

 

우리는 에디와 클로이 같이 비정상적 관계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데, 또 따지고 보면 <초크맨>에서 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 혹은 가정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왜 초크맨이 주인공 에디에게만 나타나는가에 대한 질문은 또 어떤가. 뚱뚱보 개브나 호포, 메탈 미티 그리고 니키 오인조 중에서 꿈 속에서 초크맨에게 시달리는 친구가 또 있었던가.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일 지도 모르겠다.

 

숱하게 초고 원고를 퇴짜 맞은 작가는 <초크맨>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지 그렇게 꾸준하게 쓰다 보면 언젠간 쥐구멍에도 볕이 든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많은 나라에 판권이 팔리고, 이렇게 스릴 넘치는 시나리오를 그냥 둘 리 없는 할리우드까지 달려 들었다니 축하할 일이 아닌가. 신예작가 답게 어떤 경로를 통해 책을 만나게 되었던 감사하다는 말도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초심을 잃지 마시고 앞으로도 정진해 주시길. 재밌게 읽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뱀다리] 리뷰까지 다 쓰고 나서 유투브 동영상을 보고서야 작가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됐다. 소설을 읽는 내내 왜 난 작가가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책소개에서 작가가 짚어준 몇 가지 포인트들. 유년 시절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 작은 마을에 도사린 비밀들, 어린이들이 마냥 순수하지는 않다라는 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들이 나중에 가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포인트들을 제대로 짚어낼 수 있다면 성공한 독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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