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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권을 읽는데 3일이 걸렸는데, 2권은 보름이 걸렸다. 물리적으로 다섯 배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사실 두 번째 권도 금세 읽었다. 다만 그 사이에 다른 책들을 기웃거리느라 더 시간이 필요했을 뿐.
전쟁이 끝났어도 재일 자이니치들의 삶은 나아진 게 없었다. 노아는 생부 고한수의 금전적 지원으로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해서 원 없이 공부를 하게 되었고, 모자수는 고로 사장 밑에서 성실한 파친코 매니저가 되었다. 두 형제는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성장했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가난과 비극은 피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양진과 순자,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자이니치 4대에 대한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차별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었건만 일본인들은 그들을 같은 일본 사람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자이니치들에게 가난과 범죄 그리고 냄새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우고 차별했다. 이민진 작가는 일본 사람들을 비난하는 캐릭터로 역시 같은 조선인으로 미국에서 진짜배기 미국 사람으로 자란 솔로몬의 여자친구 피비를 통해 자신이 가진 생각들을 조용하게 전파한다. 일본은 여전히 전쟁 중에 벌어진 범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어쩌면 그 점이야말로 일본이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이유가 아닐까.
또 한편으로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수년 마다 지문날인을 하고 외국인 거주자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원칙적으로 외부세계와 차단되어 살아야 하는 수많은 자이니치들에 대한 고찰이 그대로 소설에 묻어 있다. 모자수로 대변되는 아버지 세대들은 돈을 벌어 그런 차별의 벽을 뛰어 넘고자 하지만, 민족이라는 이름의 낙인은 쉽사리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난과 범죄는 많은 자이니치들을 파친코(나는 왜 ‘빠찡꼬’라는 표현과 어감이 더 마음에 드는 걸까) 사업에 뛰어들게 했고, 차별의 순환 그리고 대물림은 계속됐다.
아무리 신분을 세탁해서 세계 유수의 대학인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인 회사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자이니치들은 일본인 지배계급에게 철저하게 이용되는 소모품일 따름이다. 솔로몬과 그의 특별한 상사 가즈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그러니까 이 세상에 단순하게 진행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솔로몬이 어쩌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꿈꾸던 자신의 어머니 유미의 소망대로 일본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그럴 바에야 미국에 건너가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 대한 이해 불가는 어쩌면 원수의 나라에서 극심한 차별을 견디고 사는 자이니치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르겠다. 결국 같은 조선인의 후예였던 피비도 솔로몬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솔로몬의 삶에 느닷없이 개입했던 진짜배기 일본인 하나의 몰락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을 한탄하던 노아의 죽음은 예상했던 바여서 그런지 충격이 덜했던 것 같다. 다만, 노아가 죽은 다음에 그가 남긴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비치지 않아 좀 아쉬웠다. 그것도 작가가 의도한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 사는 자이니치들에 대해 아는 바가 일천해서인지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이물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어판에 등장하는 순자의 부산 사투리가 과연 영어판에서는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도 자못 궁금하다. 한국을 출발해서 일본으로 배경으로 한 미국소설 <파친코>는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정의할 수 없는 불편함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피어오르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었다.